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숨쉬는 고구려유적지, 중국의 문화유산 견학을 통해 무한한 발전 가능성 확인.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여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고 하는 역사 왜곡의 현장...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확실시 되는 고구려 고분등 우리 역사를 찾아 떠나는 ....

    

  

조상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고구려지역을 찾아 고구려유적을 찾아보고, 백두산에 올라 웅장하게 펼쳐진 한 폭의 그림 같은 천지를
바라보며 통일 조국을 염원하고, 거대한 중국의 문화유산 견학을 통해 중국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확인하고, 선조들의 독립운동 현장 등을
탐방하여 새로운 세계관과 소중한 우리 역사관을 간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합니다.

중국으로의 여행을 꿈꾸지 않는 여행자는 드물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중국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라는 나라는 땅이 넓은 만큼 볼거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볼거리는 대자연의 웅장함에서부터 깊은 역사가 깃들인명소, 그리고 각 소수민족들의 아기자기한 생활 모습에 이르기까지 '정말 무궁무진하다'는 말을 쓰는데 조금의 거리낌이 없을 정도입니다.



1. 일정

일      정

 20

탐방지역

 인천공항 - 상해 - 북경 - 연길 - 용정 - 도문 - 이도백하 - 백두산 - 통화 - 집안 - 단동 - 심양 - 인천공항



2. 체험 내용

참가대상

 초등학생 4학년 이상 누구나 가능  (학부모님도 참가 가능합니다)

참 가 비

  [대한항공 및 4성급 호텔 이용 기준]

포함내용

  • 국제선 왕복항공료 (대한항공) (인천 - 상해  / 심양 - 인천공항)
  • 국내선 왕봉항공료 (남방항공) (북경 - 연길)
  • 초고속열차 (상해 - 북경 : 2등석 이용 기준)
  • 유류할증료
  • 전쟁보험료
  • 호텔 숙박 : 4성급 호텔  (2인1실)
  • 전용버스 및 현지가이드 수고비
  • 현지가이드
  • 일정상의 식사비 (조식-호텔식, 중식-현지식, 석식-한식 및 특선요리)
  • 주요 관광지 입장료
    (상해 임지정부청사, 홍구공원, 동방명주, 황포강 유람, 자금성, 만리장성, 용경협, 이화원, 백두산, 장백폭포,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호산장성 등)
  • 북경 서커스 관람
  •   압록강 유람선 / 두만강 땟목 체험
  • 백두산 짚차 탑승
  • 최고보상한도 1억원 해외여행자 보험
  • 중국 단체 비자비용
  • 현지 가이드 수고비 및 버스기사 수고비 등 일체 포함
  • 각종 공항세금

   미포함내용

기타 개인경비 불포함    ◆ 호텔 팁 불포함      기타

   제공내용

여행 자료집 1권            티셔츠  1벌   

  참고내용

상세일정은 항공사와 현지사정에 따라 다소 일정변동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권 만료일이 6개월 이상 남아있는지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약시 정확한 여권상의 영문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합니다.
- 여권 복사본 팩스송부 요망

  신청 및
 납부방법

화랑단 홈페이지의 참가신청서 작성 메뉴를 통해 참가신청서 온라인 작성 또는
    화랑단 이메일 (
hwarangdan@hanmail.net)을 통한 신청서 작성 발송
참가자 계약금 통장으로 입금 (500,000원 - 참가 학생 이름으로 입금)

모집기한

 선착순

모집인원

 15명

출발인원

 최소 10명 경우 진행

주      최

 한국청소년화랑단

 

 화랑단 해외탐방 전문여행사 [여행신화 - 2011 유럽배낭여행 최고 영업 실적]

출발, 도착
장소 안내

추후 개별 안내

   참 가 자
   준 비 물

여행자료
  - 여 권 /  현지 돈 (유로화) / 예비용 사진(여권용) / 소형계산기 / 필기도구와 수첩
    카메라 / 회화집 또는 전자수첩 / 휴대폰 / 손목시계

옷가지와 신발
  - 속옷 / 티셔츠 / 바지 / 재킷과 가디건 / 선글래스   / 편안한 복장 /  비옷과 우산
 /  운동화 
준비하면 유용한 여행준비물 및 간식용 음식
  - mp3 / 책 / 컵라면 / 쵸코렛, 캔디 등

전기용품
세면도구
  - 칫솔과 치약 / 샴푸 / 세탁용 비누 / 자외선 차단 크림  / 티슈와 손수건  / 생리용품
    손톱깎이 / 비상약 / 비닐봉투  / 물통  / 작은 가방 등

구 급 약
  - 소화제, 감기약, 멀미약, 지사제, 항생제 밴드등 상비약

  참가문의

한국청소년화랑단  총대장  유 제 천
(전화) 02 - 2235 - 2673, 2675  /  010 - 5307 - 2676

[http://www.ihwarang.or.kr]    [E-mail :
hwarangdan@hanmail.net]

 

 

☞ 탐방사진 보기 :  클릭하시면 탐방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3. 기본 일정내용   ( 여행일정은 현지사정에 따라 약간 조정될 수 있습니다)

일 자

지 역

교통편

시 간

세 부 일 정

식사 

제1일

 

상 해





 

CZ 688

전용버스




06:00
08:45
14:10





인천 국제공항 3 "A카운터" 앞 집결
인천 국제공항 출발 (약 1시간 55분 소요)
상해 국제공항 도착
현지 가이드 미팅 후
관광지로 이동
-
윤봉길 의사 의거지인 [홍구공원] 및 매헌기념관 견학
- 상해의 전망대 [
동방명주] 및 [역사박물관] 견학
- 석식 후
상해의 야경을 감상 할 수 있는 [황포강 유람]
호텔 체크인 및 휴식

: 기내식
석 : 현지

 

 

 

HOTEL : 레이펀트 호텔 또는 동급 호텔 (4성급)

윤봉길의사 기념비                                        동방명주                                        황포강 유람

제2일

상해

북경



 

전용버스고속열차전용차량



 

08:00

13:17



 

호텔 조식 후 고속열차역 (홍차오)으로 이동
상해 홍차오역 출발
북경 남역 도착
세계 최대의 [천안문광장] 탐방
명/청시대 황제들이 살던 황궁
[자금성] 탐방
중국 최고의 잡기 공연 [북경 서커스] 관람
석식 후 호텔 체크인 및 휴식

조 : 호텔식
중 : 한   식
석 : 오리구이   

 

 

 

HOTEL : 홍서호텔/익스프레스홀리데이호텔  또는 동급 (4성급)

                    천안문광장                                                                     자금성

제3일

븍경




 

전용버스




 

전  일




 

호텔 조식 후 탐방
세계문화유산 [만리장성] 탐방 - (케이블카 포함)
북경의 소계림
[용경협] 유람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탐방

석식 후 북경 최고의 번화가
[왕부정거리] 탐방
호텔 체크인 및 휴식

조 : 호텔식
중 : 교자연
석 : 현지식

     

HOTEL : 홍서호텔/익스프레스홀리데이호텔
            또는 동급 (4성급)

 만리장성                                              용경협                                                 이화원

제4일

북경

연길
용정

도문

이도백하
 

전용버스
CZ6152

전용버스



 
 

10:35
12:30




 

호텔 조식 후 공항으로 이동
북경 국제공항 출발
연길 국제공항 도착
중식 후
용정으로 이동 (약30분 소요)
항일운동 정신을 고취시켰던 일송정 (차창) 관광
대성중학교, 윤동주 시비 관광 후 도문으로 이동 (약1시간 소요)
두만강 이북마을인 남양시 관광 및 기념촬영
이도백하로 이동
(약4시간 소요)
석식 후 호텔 체크인 및 휴식

조 : 호텔식
중 : 한   식
석 : 현지식

     

HOTEL: 군안호텔 또는 동급 (준4성급) 2 1)

대성중학교                                   중국-북한 국경지대                                두만강 땟목 탐방

제5일

이도백하



북백두산





통화 
 

전용버스










 

전  일










 

호텔 조식 후
북파산문으로 이동
(약40분 소요)
산문에서 셔틀 환승 후 봉고 주차장으로 이동
(약30분 소요)

☞ 백두산 북파 코스 ☜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천문봉에서

[백두산 천지 조망]

(10인승 봉고 차량으로 등정)

천지에서 흘러내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약60m 높이의
[장백폭포] 탐방
유황 자연 온천수가 흘러나오는 온천지대 관광
백두산 북파 코스 관광 후
통화로 이동  (약 5시~6시간 소요)
석식 후 호텔 체크인 및 휴식

조 : 호텔식
중 : 현지식
석 : 현지식

     

HOTEL : 희래등호텔/휘풍호텔 또는 동급 (4성급)

백두산 천지                                         백두산 입구                                            장백폭포

제6일

통화
집안




단동
 

전용버스






 

전 일






 

호텔 조식 후
집안으로 이동 (약1시간30분 소요)
고구려의 위대한 왕이였던 [광개토대왕능],
광개토대동양의 피라미드라 불리우는
[장수왕능] (장군총) 답사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였던 [ 답사
천혜요새였던 [환도산성 답사]
단동으로 이동 (약4시간 이동)
석식 후 호텔 체크인 및 휴식

조 : 호텔식
중 : 불고기
석 : 한   식

     

HOTEL : 가일양광호텔 또는 동급 (4성급)

오호분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제7일

단동



 

전용버스



 

전일



 

호텔 조식 후
관광지로 이동
압록강 유람 [신의주 / 월량도 / 단교 조망]
고구려장성으로 박작성으로 불리는 [호산장성] 탐방
중식 후 심양공항으로 이동
(약4시간 소요)

조 : 호텔식
중 : 한   식

심양
인천

KE834 
 

 

심양 국제공항 출발 (약 1시간 35분 소요)
인천 국제공항 도착

압록강철교                         압록강에서 바라본 북한 신의주 지역                           호산장성

☞ 상기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약간 조정될 수 있습니다.



4. 탐방지역 개요

세계적인 도시로의 도약, 북경(北京, 베이징)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일컬어지는 3천년 역사의 고도이며 중국의 수도이다. 중국의 정치, 행정, 문화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만리장성을 비롯하여 고궁, 이화원 등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볼거리들이 무궁무진하여 날이 갈수록 관광도시로서 그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총면적은 16000㎢이며, 서·북·동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산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한다. 또한 온난 습윤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다. 봄·가을이 짧은 반면, 겨울과 여름이 비교적 길다. 연평균 기온은 13℃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506㎜이다. 인구는 약 1,090만 명이며, 그 중
시내에 거주하는 인구는 500만 정도이다.

역사
중국의 수도인 북경은 3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전국(戰國) 시대에 잠시 연(燕)나라의 수도였다가, 원나라 때 몽고족이 중국을 통일한 후에 북경을 수도로 정한 이후 거의 1000년 동안 수도로서의 입지를 지키고 있다. 오늘날의 북경은 발달된 현대적 도시이다. 중국의 정치, 문화,
과학, 상업 등의 중심 도시이자 과거의 모습을 잘 지키고 있어 관광 도시로서도 유명하다.

■ 중국 민주화의 상징, 천안문광장 (天安門廣場)


천안문


| 천안문

천안문 광장-인민영웅기념비
천안문 광장-인민영웅기념비


천안문 광장- 인민대회당


중국 역사박물관 (중국 혁명박물관)


인민영웅기념비 뒤로 보이는
모택동 주석 기념당

북경 시내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중국사람들의 드넓은 기개를 대표하는 명소다. 천안문 광장은 원래 1651년에 설계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에 시멘트로 접합되고 네 배나 큰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전체 면적이 44만㎡이며, 동시에 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광장 중의 하나로 꼽힌다.  또한 여러개의 인상깊은 건축물들이 주변에 들어서 있다.  광장을 중심으로 해서 북쪽은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천안문, 동쪽은 중국 국가박물관, 서쪽은 인민 대회당, 그리고 남쪽에는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는 중국 인민영웅기념비가 서 있다. 천안문 광장은 옛부터 대규모 군중시위, 집회, 행렬, 경축 행사 등이 이어졌다.
천안문 광장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천안문 사태'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1989년 4월 중국 전총서기이자 개혁가였던 후야오방(胡耀邦)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이 운동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확산이 되어 서로 손을 맞잡고 천안문 광장으로 점차 운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위기를 느낀 당시 지도자였던 덩샤오핑(登小平)은 이들을 진압할 방법을 강구하던 끝에 결국은 같은 해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 모여있던 학생과 시민들을 기관총 난사와 전차 동원 등의 무력을 이용해서 강제 진압함으로서 사건을 마무리시켰다.  이후부터 천안문 광장은 중국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천안문광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볼거리는 해가 뜨는 새벽에 거행되는 국기 게양식이다.

행진곡과 함께 군인들이 정렬하여 나타나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게양하는데, 이 의식에 걸리는 시간만 거의 30분 정도 소요된다.  국기 게양시간과 강하 시간은 매번 조금씩 다른데 그 이유는 넓은 중국 대륙에서 해가 뜨고 지는 자리와 천안문 광장의 지평선이 서로 일치할 때를 계산하여 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양식이 거행될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광장을 지나갈 수 없고 대신,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것은 괜찮다.

해가 어슴프레 뜨는 새벽의 오묘한 기운 속에서 벌어지는 이 작지만 웅장한 의식은 외국 관광객들 뿐 아니라 북경을 방문한 타지역의 중국인들에게 북경에 오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필수 코스이다.

※ 천안문과 광장 주위의 건축물
▶ 천안문
천안문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해 있고,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명나라 영락(永樂)연간인 1417년에 지어졌으며, 옛날에는 황제가 사는 성의 정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렸다가 청대에 개조된 후부터는 '천하를 편안하게 하다'라는 뜻의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33.7m 높이의 천안문은 황제의 대형 의식이나 새 군대 파견을 위한 행사를 위해 이용되었다.
황금색 기와 지붕과, 높이 추켜든 추녀, 그림과 조각으로 단장된 대들보, 그리고 주홍색의 웅장한 기둥들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한 하얀색 대리석 위에 새겨진 조각들은 하늘의 평화와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문 앞에 있는 5개의 백대리석 다리는 금수교(金水橋)라고 하는데 조각이 아름답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선언이 이 문 위에서 이루어져 중국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

▶ 천안문광장
천안문 광장은 베이징의 중심이다. 청나라 때까지만 해도 여기에 없었다. 천안문 앞 대로인 장안대가(長安大街)도 없었다.  이것들이 생긴 것은 1959년의 일로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정비한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11만㎡ 정도였다. 그때의 정비로 넓이가 40만㎡로 확대되어, 50만 명 정도의 집회가 가능하게 되었다.
천안문을 북쪽으로 바라보고 있는 천안문 광장은 무엇보다도 그 넓이에 압도되지만, 또하나의 색다른 명물은 국기를 게양하고 내리는 과정이다.
그 시간이 가까워지면 국기 게양을 구경하려고 게양대 주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특히 지방에서 베이징을 구경하려고 방문한 중국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그리고 국경일이라든지 메이데이에는 천안문과 그 사방의 건물지붕은 조명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도 있다.

인민영웅 기념비
천안문 광장의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은 1952년에 세워진 기념비로 높이 37.94미터에 탑 토대만 3천여 평방미터의 중국 역사상 최대의 기념비로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명·무명의 전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탑신은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탑의 주변은 소박한 미의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2층의 난간이 두르고 있다.  탑에는 모택동 주석의 친필로 쓴 "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인민영웅은 영원히 불멸이다)' 8글자와 중국 현대사가 대형 부조로 새겨져 있다.
또한 뒷면에는 저우언라이(主恩來)가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기념비의 계단에 있는 총탄의 흔적은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사건 때 생긴 것이다.

▶ 인민대회당
광장의 서쪽에 위치하는 인민대회당은 높이 46미터, 길이 336미터, 너비 206미터에 건축면적이 17만 평방미터에 달한다.  대회당의 정면에는 높이가 25미터에 달하는 12개의 대리석 문주가 있으며, 중앙의 로비로 들어가면 연분홍색 대리석으로 깔린 바닥과 한백옥으로 만들어진 석주가 서있으며, 천장에는 수정 샹들리에가 걸려져 있다.  중앙로비를 지나면 우아한 인테리어의 대강당이 나오고 대회당의 북부로 가면 5천개의 좌석을 가진
연회장이 나온다.  모든 건축물은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에 외국의 인테리어 분위기를 가미하여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다.

▶ 모주석 기념당
천안문 광장의 남쪽에 있는 모택동주석 기념당은 1977년 9월에 지어졌다.  건축물은 대추색의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기념당은 북청,첨앙청과
남청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으며, 방부처리된 모택동의 시신이 첨앙청 내에 있는 수정관에 뉘어져 있고 주위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진귀한 꽃들이 관을 두르고 있다. 북청 상층에는 모택동, 주은래 등의 개국원로의 혁명업적이 나열되어 있다.

중국 국가 박물관
천안문광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중국 국가박물관은 2003년 2월28일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59년에 세워진 중국 역사박물관과 1961년에 세워진 중국 혁명박물관이 합쳐져 만들어진 곳으로 건물높이 33미터, 길이 313미터, 너비 100미터의 웅장한 기세를 가졌다.  인민 대회당과 서로 마주보고있으며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진행하고 있다.

■ 마지막 황제의 배경인 자금성(紫禁城 : 세계문화유산, 1987)
자금성 자금성-황제의 침실
자금성-황제의 침실
자금성 건청문 앞에 서있는 청동 사자상 (수컷)
자금성 건청문 앞에
서있는 청동 사자상
자금성 어화원에 있는 두이슈산_태호석으로 산을 쌓았다
자금성 어화원에 있는
두이슈산_태호석으로 산을 쌓았다
자금성
자금성

북경시의 중심에 위치한 명·청대의 황궁으로, 천안문 정문으로 들어가 울창한 가로수 길을따라 단문과 오문을 지나 보이는 곳이다. 중국에서는 고궁(故宮)이라는 이름이 더 친근하게 이용되고 있으며 '자금성'이라는 이름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과 같다"는 데에서 연유된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이며, 총 9999개의 방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고대 궁전 건축물이다. 1406∼1420년에 건조된 이래로 56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15명의 명나라 황제와 9명의 청나라 황제가 일생을 보냈고, 현재는 105만점의 희귀하고 진귀한 문물이 전시·소장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자리잡고 있다.

방어의 목적으로 궁전 밖에는 10m 높이의 담이 있는데, 사방에는 성루가 있고 밖에는 넓이 52미터, 깊이 6미터의 호성강(護城河)이 흐른다. 4면의 담에는 각기 문 하나씩이 나있는데 남쪽에 오문(午門), 북쪽에 신무문(神武門), 동쪽에 동화문(東華門), 서쪽에 서화문(西華門)이 있다. 1988년 개봉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꼼꼼하게 관광을 하는 데에는 하루가 꼬박 걸리고 그냥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도 2시간 정도가 걸릴 만큼 넓은 곳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화공연도 종종 열려 문화유적지나 관광지로서 뿐 아니라 중국시민의 휴식장소, 문화장소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1987년에 이르러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황제가 제사를 지내던 천단(天壇 : 티엔탄), (Temple of Heaven: 세계문화유산, 1998)

천단공원-기년전
천단공원
천단공원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회음벽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회음벽
천단공원-기년전으로  들어가는 문
천단공원-기년전으로 들어가는 문
천단공원_원구(황제가 하늘에 기도드리던 곳)
원구(황제가 하늘에 기도드리던 곳)
천단공원
천단공원

명·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제사를 지내고 풍년을 기원하던 곳으로, 북경시 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면적은 270㎡이다. 명 영락(永樂) 4년(1406)에 지어지기 시작해서 영락 18년(1420)년에 완성되었다.

천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사당 건축물로, 명·청나라 황제들이 매년 하늘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당시의 황제에 봉해진 자들은 스스로를 "천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대자연을 숭배했으며, 천지를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제왕의 중요 업무였다. 그래서 고대 설계사들은 "하늘"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기 위해 힘을 다했다.

천단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명확하게 내벽과 외벽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쪽의 벽은 원형, 남쪽의 벽은 사각형으로 원형은 하늘을 상징하고 사각형은 땅을 상징한다. 이것은 중국 고대의 "천원지방(天圓地方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다.)"에 부합하는 것이다. 북쪽 벽은 또한 남쪽 벽에 비해서 높은데, 이것 또한 "천고지저(天高地低 :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 두 개의 벽은 또한 천단을 내단과 외단으로 구분하는데, 주요 건축물은 내단에 있다. 북쪽에는 기년전(祈年殿)과 황건전(皇乾殿)이 있고, 남쪽에는 원구단(圓丘壇)과 황궁우(皇穹宇)가 있다.
천단공원 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물은 기년전(幾年殿)으로, 황제가 오곡이 풍성하기를 빌던 곳이다.

삼중 처마로 된 원형 궁전이며, 높이는 38m이다. 3층으로 이루어진 푸른지붕은 유리기와라 불리고 하늘을 상징하는데 명대에는 아래부터 자주색,황색,푸른색의 3색이었다고 한다. 중앙의 '용정주(龍井柱)'는 일년 사계절을, 가운데 12개의 기둥은 12개월을, 바깥쪽의 12개 기둥은 12시진(2시간)을, 내외 처마 기둥 24개는 24개의 절기를 각각 상징한다.

※ 천단공원은 천단관련 건축물들을 중심으로 큰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공원 안에서 새벽부터 검술과 태극권을 하는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른 새벽부터 전통악기를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이며 수십 명이 함께 모여 큰 소리로 노래부르는 모습, 일렬로 줄 맞춰 서서 느린 동작의 태극권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중국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 명나라의 황제들이 잠들어 있는 명13릉(明十三陵 : 밍스싼링)

명 13릉
명13릉_정릉(지하궁전의 내부모습)
명13릉_정릉(지하궁전의 내부모습)
명13릉_장릉
명13릉_장릉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묘로서, 북경 시내에서 서북쪽으로 40km 떨어진 창평현(昌平縣) 천수산(天壽山) 기슭에 위치해 있고, 면적은 약 120㎡이다. 명 왕조가 북경으로 천도한 후 13명의 선조 황제의 릉을 이곳에 이장하였다. 명나라 선조의 장릉(長陵)이 명 영락7년(1409년)에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하여 이후에 11개의 릉이 장릉의 양 옆으로 세워졌으며, 명 송정제 주유검(朱由檢)의 사릉(思陵)이 마지막 릉인데, 청 순치(順治) 원년(1644년)에 정릉(定陵)이라고 칭해지고 땅 위에 건축하였다.

명말(明末)과 청초(淸初) 시기의 많은 전쟁들과 그 이후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청 건륭(乾隆) 50-52년(1785-1787)에 비교적 큰 복구공사가 진행되었다. 현재는 장(長), 정(定), 소(昭)릉 세 곳과 신도(神道) 네 곳만이 대외에 개방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정릉 지하 궁전은 1956년에 최초로 발굴한 황제능묘이다. 지하궁전은 높이 27m, 면적 1,195㎢의 완전한 석조구조로서 견고하고 삼엄하다.

■ 서태후의 여름 별장인 이화원 (세계문화유산, 1998)
쿤밍호 너머로 보이는 이화원
쿤밍호 너머로 보이는 이화원
이화원-동궁문
이화원-동궁문
이화원
이화원

1998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중국에서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는 황족 정원이다. 특히 서태후의 여름 별장으로 더 유명하다. 북경 서쪽 외곽인 해정구(海淀區 : 하이디엔취)에 위치해 있으며, 북경 시내에서는 15㎞ 떨어져 있다.

이화원의 전신은 북경 청의원으로, 후에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원명원을 불태웠을 떄 함께 파괴되었다. 그러다가 광서 14년(1888)에 서태후는 해군 군비를 이용해서 다시 재건했으며 이 때 이름을 현재의 "이화원"으로 바꿨다. 1900년, 이화원은 또다시 팔국 연합군의 선공을 당했다. 서태후는 서안에서 북경으로 돌아온 후에 다시 거대한 자금을 들여 복구에 나섰다. 이화원은 무엇보다도 규모가 실로 엄청나며 총면적이 294㎡이다.

본래 평지였던 곳을 파내 만든 곤명호(昆明湖)와 호수에서 파낸 흙으로 쌓은 만수산(萬壽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수면이 전체의 3/4을 차지한다. 서태후가 이화원에 이처럼 각별한 관심을 둔 목적은 피서와 요양었으며, 1903년부터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냈다. 서태후는 이 곳에서 신하들과 국정을 논할 일이 많이 생기자 정원 앞 부분에 궁전과 생활거주지구를 짓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화원은 궁전과 정원 두가지 기능을 모두 갖춘 황족 정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화원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곤명호는 인공호수이지만, 인공호수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규모가 실로 엄청나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서 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보트와 곤명호 위를 운행하는 유람선을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특히 곤명호 동쪽 기슭에 잇는 17 공교의 난간에 새겨져 있는 544마리의 사자도 볼 만하다. 또한 곤명호를 안고 있는 만수산은 역시 곤명호를 팔 때 나온 흙을 쌓아 만든 인공산으로 화려한 누각이 있으며 이화원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서 역시 인기가 좋다.

이화원의 주요 명소들로는 정문인 동궁문(東宮門)을 비롯해, 덕화원(德和園),장랑(長廊),불향각(佛香閣) 등이 있다. 동궁문은 이화원의 정문으로 삼명양암(三明兩暗)의 무전식 건축양식이 사용되었으며, 덕화원에는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큰 규모의 경극극장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21미터에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랑은 동쪽으로는 요월문(邀月門)에서 시작하여 서쪽의 석장정(石丈亭)까지 전체길이 728미터에 총 273칸의 화랑으로 이어진 복도 건축물로 중국에서 가장 크고, 길며, 유명한 장랑(긴복도)이다.

마지막으로 불향각은 만수산 앞의 산비탈길에 세워진 높이 21미터의 거석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남쪽으로는 곤명호를 향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지혜해불전(智慧海佛殿)을 기대고 있다. 이화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 만리장성 - 중국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 장성(長城 : 창청)
만리장성 만리장성 만리장성 케이블카

"不到長城非好漢(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으면 호한이 될 수 없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진의 강력한 통일제국체제가 낳은 상징적 산물이다.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약 75km쯤 떨어진 곳에 교통이 편리하다는 뜻인 "사통팔달"에서 이름이 유래한 "팔달령"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의 만리장성은 보존이 가장 잘 되어 있어 만리장성 중에서도 대표적인 구간으로 대부분의 만리장성 관광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015미터이며, 산세가 험준한 편이다.

장성 위에서 구불구불 기복이 심한 산세를 따라 멀리까지 뻗어있는 견고한 성을 바라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지기 시작한 장성은 200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그 길이가 5천만m에 이른다. 장성은 북방의 유목민족들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북방의 유목민족들은 시베리아의 혹한으로 더 이상 북쪽으로는 진출할 수 없게 되자 남쪽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자가 풍부한 농경지대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만리장성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따라서 만리장성은 단순히 군사적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막인 동시에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문화를 구분하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오늘날 말하는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浴館)에서 시작하여 요녕성 압록강변에 이르는 635만m 길이의 성벽은 대부분 명나라때 지어진 것들이며,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가드레일과 케이블카는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제는 흘러간 역사의 자취가 된 장성은 세계 7대 건축물, 8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또 만리장성은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 거대한 명성을 만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던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 묻혔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 계림의 축소판 용경협(龍慶峽 : 롱칭시아)

용경협_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
용경협_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
용경협_용모양의 에스컬레이터
용경협_용모양 에스컬레이터 입구
용경협_용모양 에스컬레이터 입구
용경협 유람선
용경협_유람선
용경협 용경협

북경 외곽에 위치한 팔달령에서 40분 정도가 걸리는 곳에 위치해 있다. 남방 산수의 부드러움과 북방 산수의 웅장한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으며, 또한 "작은 계림(小桂林), 작은 삼협(小三峽)"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솟은 가파른 봉우리들이 장관을 이룬다. 북경의 16 명소 중의 한 곳으로, 전체 면적은 119㎢이며, 주요 명소는 70m 높이의 콘크리트 댐으로 중국의 북방 지역에서는 최대 규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은 여름에는 폭포, 겨울에는 얼어붙은 폭포를 볼 수 있다. 7㎞ 길이의 배유람은 또 하나의 졀경을 연출한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와 산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10분 간격으로 유람선이 대기하고 있다. 그러면 배를 타고 진강사와 같은 역사적 장소들도 구경할 수 있다. 강은 절벽 측면을 따라 흐르며, 관광객들은 종산(鍾山), 봉관도(鳳冠島)와 같은 깎아내릴 듯한 절벽 등의 30여 가지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이 곳은 여름의 평균 기온이 6.4℃로 북경 시내보다는 낮다. 봄부터 가을까지 "작은 계림"이라 불리며, 시원한 아름다움으로 빛을 발하던 용경협은 겨울이 되면 물이 얼어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은 아쉬움 대신 환상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환상적인 얼음의 축제, '빙등예술절(氷燈藝術節)'이라고 불리는 이 행사는 매년 1월부터 약 두달간 4,000평방미터의 얼음바닥 위에서 진행되며, 올해로 벌써 16회를 맞고 있다. 빙등제는 이미 하얼빈의 것으로 유명해졌지만, 이곳의 빙등제를 "작은 하얼빈의 빙등제"라 불러도 될 만큼 그 재미와 아름다움에 있어서 그것에 뒤지지 않는다.

용경협은 하루 안에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차를 타고 입구에서 내려서 20분 정도 걸으면 댐에 도착할 수 있다. 거기서 258m의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된다. 이 에스컬레이터는 1996년에 완공되었으며, 용의 형상을 하고 있으며 길이면에 있어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기도 하다.


백두산으로 가는 중요 길목, 연길(延吉 : 이엔지)

연길시내 중국속의 작은 한국 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여 러시아,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면적이 4만 3547㎢, 인구가 219만 5000명 정도로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중 40%가 조선족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이곳을 개척하였고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이후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어 1955년에는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연길(延吉)·도문(圖們)·돈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시와 왕칭(汪淸)·안도(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요 하천으로는 도문강·송화강(松花江)·목단강(牡丹江)·소분강[綏芬江] 등이 있고, 도문강 유역에는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불리는 국제개발지, 훈춘경제개발지가 있다.

조선 말기 우리 민족에 이주하면서부터 연변은 한반도와 역사를 같이 하며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독립운동가들이 활약했으며 그 때문에 청산리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勝地)·봉오동(鳳梧洞)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 겨레의 숨결이 살아 쉬는 백두산(白頭山 : 바이토우샨), CHANGBAISAN
백두산(장백산)입구
백두산(장백산)입구
백두산(멀리 장백폭포가 보인다)
백두산(멀리 장백폭포가 보인다)
백두산 천지정상
백두산 천지정상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백두산 천지 정상(관광객들이 타고 온 짚차들이 세워져있다.)
천지 정상 (관광객들이 타고
온 짚차들이 세워져있다.)
천지로 가는 길(짚차를 타고 천지까지 간다)
천지로 가는 길
(짚차를 타고 천지까지 간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자리잡고 있는 중국 동부 최고의 산맥이다.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활동으로 부식토가 산정상에 하얗게 쌓여 붙여진 이름으로, 말 그대로 '흰 머리 산'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청나라때 백두산을 장백산신으로 봉한 이후에 "장백산(長白山 : 창바이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지고 있다. 원래는 화산활동을 하는 산이었으나 이미 250년 전에 활동을 멈춘 사화산(死火山)에 속한다.

백두산은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천연식물원으로서 동북호랑이를 비롯한 희귀한 야생동물과 야생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국가급 보호구에 속한다. 전체 면적 중 1/3은 중국의 영토로, 2/3는 북한의 영토에 속한다. 백두산 연평균기온은 -8도로 연중 눈, 비가 내리는 날이 200여일에 달한다.

산문매표소에서 입장료(보혐료 ¥5와 입장권 ¥120)를 구입하고 백두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는 보통 지프를 이용한다. 지프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20여 분을 달리면 천지에 닿는다. 백두산은 주변의 산을 갑자기 뚫고 솟아나온 형상이다. 지프는 천지에서 약 30m 이르는 곳까지 올라가고,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천지의 둘레는 14km이며, 천지 주변에 16개의 산봉우리가 둘러싸고 있다. 이 천지 너머로 북한군 초소가 드문드문 보이며, 천지에서 배를 탈 수 있지만 천지도 중국과 북한 영토로 나뉘어져 있어 중국영토 안에서만 가능하다.

백두산은 6월 말까지도 눈이 남아 있고 9월에 첫눈이 내리는 추운 곳이다. 그러므로 입산할 수 있는 기간이 6월말∼9월초의 약 3개월 남짓이므로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시기 안의 일정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동북 최고의 고산호, 천지(天池 : 티엔츠)
백두산 풍경중 최고로 뽑히는 천지는 화산의 분화구에 생성된 것으로 해발 2,200m 높이에 위치해 있으며, 백두산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데에서 "천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원형을 띠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0㎢, 호수 주위 길이가 13㎞, 평균수심이 204m 정도이다. 천지는 옛부터 안개가 많고 1년 중 맑은 날이 거의 없다. 천지를 둘러싸고 백두산의 16개 봉우리가 솟아 있으며 천지의 물이 흘러 장백폭포와 온천을 형성한다. 또 장백폭포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천지를 닮은 작은 호수가 있어 '소천지'라고 불린다.

천지의 수심 중 가장 깊은 곳은 373m나 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가장 깊은 화구호(칼데라호)로 알려져 있다. 이 곳의 연평균기온은 -7.3℃, 평균수온은 0.7-11℃이며, 11월에 얼어붙었다가 6월이 되어서야 녹는데 얼음의 두께가 1.2m나 된다. 천지의 수질이 매우 깨끗하여 먹을 수도 있으며, 주로 지하수와 강수량으로 채워진다. 이곳에는 잉어를 비롯한 몇 종류의 어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중국과 북한의 국경 호수로서 압록강과 두만강 송화강의 발원지이다.

하지만 이 곳의 기후가 불규칙하고 거센 바람과 폭풍우가 자주 발생해서 여행객들이 맑은 날에 천지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기란 쉽지 않다. 천지는 또 국경선이 통과해 중국과 북한의 경계에 놓여있는 곳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지닌다.

■ 1년 내내 얼지 않는 장백폭포(長白瀑布 : 창바이푸뿌)
장백폭포 장백폭포(長白瀑布)

천지 북쪽에 결구가 형성되어 있고, 천지의 물이 결구를 통해 1천여 미터의 긴 협곡까지 흘러 폭포를 형성했다. 장백폭포는 높이가 60여m의 웅장한 폭포로 200m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폭포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폭포는 크게 두 갈래의 물줄기로 나눠져 있고 동쪽 폭포 수량이 전체 수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며 떨어진 물은 송화강(松花江)으로 유입된다. 중국 북방의 폭포들은 모두 겨울에는 얼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오로지 장백폭포만은 일년 내내 멋진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비룡폭포(飛龍瀑布)"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윤동주 시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용정(LONG JING, 龍井)시
연길에서 30분 거리의 백두산 길목에 있는 위성도시이다.
길을 가면서 저멀리 산에 서있는 일송정과 선구자의 가사 속에서 항일정신을 돋우던 해란강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아직도 시비가 서있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교, 용정우물터가 있다.

■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大成中學校)
대성 중학교 대성중학교 내 전시관
대성중학교 내 전시관
 
민족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학교이다. 현재는 용정제일중학교(龍井第一中學校)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단 신관과 구관으로 나뉘어져, 구관 앞에는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가 세겨져 있는 윤동주시비(詩碑)가 세워져 있으며, 건물 2층에는 기념전시관이 꾸며져 있다.

기념관에는 사진, 화보, 책자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당시의 윤동주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곳은 재야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와 정일권 전 총리의 모교이기도 하다.

■ 국내성터 - 서기 3년부터 427년까지 약 400여년동안 고구려의 수도가 자리했던 곳.
유리왕 22년, 서기 3년부터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기 전인 427년까지 약 400여년동안 고구려의 수도가 자리했던 곳이다.

졸본성에 이은 고구려 제2의 수도였던 국내성은 사각형 방형으로 북쪽 우산과 서쪽 칠성산에 에워싸인 배산임수의 천연요새이다. 압록강 서쪽에 위치한 국내성은 총면적 13,000평, 성길이 2,686m, 높이 1~5m로 총6개의 성문과 해자가 갖춰져 있었다. 그러나 1921년 중국정부에서 성을 개수하면서 옹성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또한 동서남북에 각각 세워져 있던 성문마저 1947년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의 전투 때 소실되었다. 원래 성벽의 높이는 7m였으나 거의 훼손되어 없고 현재 민가가 있는 남서쪽 성벽 3~4m 와 아파트 건물 사이에 위치한 벽 4~5단만이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 광개토왕비 -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414년 부왕인 19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고구려 20대 장수왕이 414년 부왕인 19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이다.

비문은 고대 한일관계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집안시에서 동북쪽으로 5km 떨어져 있다. 누각 안에 세워진 짙은 회색의 천연암석 비석은 높이6.39m, 너비 1.35~2m, 무게 37톤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4면에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행으로 구성된 장방형으로 총 44행에 각각 41자를 담아 총 1,775자의 예서체 한자가 빼곡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마모가 심해 대부분은 판독이 불가능하다. 비문은 심오한 내용의 구도를 지닌 문장과 더불어 서체의 장중함으로 인해 광개토대왕의 사적이 더욱 돋보이도록 꾸며져 있다. 현재의 광개토대왕릉비를 보호하고 있는 8각형 누각은 1982년에 새로이 건축한 것이다

■ 장군총 -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
413-490년 사이에 축조된 고구려의 대표적인 적석묘로 고구려 20대 왕인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능이다.

집안의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한 형태의 능으로 집안시 북쪽 5 km 떨어진 통구고분군에 있다. 고구려의 비약을 상징하므로 '동방의 금자탑' 혹은 '동방의 피라미드'라고도 불린다. 장방형 화강암 벽돌을 매단 안쪽으로 쌓아 높이 12.4m, 각변 길이 31.6m의 7단 계단식 사각형 피라미드 형태로 만든 능이다. 장군총을 쌓은 화강암은 집안에서 8km 떨어진 고대 채석장에서 겨울에 얼음을 얼려 미끄러지게 하여 운송한 것이다. 능에 이용된 1,100개의 장방형 화강암은 장대석으로 정확한 규격으로 정교하게 잘라 축성하였으며 능 우측에는 철제계단이 설치되어 능 제5단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묘지 내 현실과 능 꼭대기인 상부의 관람이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장군총은 발굴전 이미 도굴꾼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로 출토되어 유물이 전무한 상태이다.

■ 환도산성 - 유리왕 21년 국내성으로 이전한후 반원형 산봉우리와 주위 능선을 이용해 만든 산성.
유리왕 21년 국내성으로 이전한후 676m의 반원형 산봉우리와 주위 능선을 이용해 만든 총둘레 7km의 산성이다.

환도산성은 집안시 북쪽 통구강을 따라 약 2.5km 떨어진 환도성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국내성이 평성인 도성인 반면 환도산성은 유사시 적군과 대치하기 위해 쌓은 군사적 위성으로 '산성자산성' 혹은 '위나암산성'이라고도 불린다. 발말굽 모양의 불규칙한 타원형 형태의 돌로 쌓아롤린 산성 입구에는 현재 석각으로 된 안내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환도산성에는 현재 약 5m 높이의 북쪽 화강암 성벽과 말에게 물을 먹이던 음마지, 전투를 지휘하던 점장대를 비롯해 병영터와 궁전터 흔적들이 일부 남아있다.

■ 5회분 5호묘 - 우산하 고분군 남쪽에 자리한 7세기 고구려분묘.
우산하 고분군 남쪽에 자리한 7세기 고구려분묘로 내부관람이 허용되는 곳이다. '5회분5호묘'라는 특이한 명칭은 큰 봉토분 다석개가 동서방향으로 일렬로 나란히 서있는 모습이 마치 투구같다 하여 '투구 회'자를 붙여 5회분이라 하고 그중 다섯번째에 해당하는 분묘라는 뜻으로 '5호묘'라고 칭한 것이다. 5호묘는 4호묘와 정문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자리해 4호묘와 5호묘를 일컬어 일명 '쌍둥이묘'라고도 한다. 고구려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5호묘는 높이 8m, 둘레 180m로 석실은 지하 3-4m에 자리하고 있다. 묘실 내에는 피장자와 부인, 첩의 관으로 보이는 돌로 만든 관대 세개가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 두만강(豆滿江)
북한을 바라볼 수 있는 중국과 북한의 접경에 위치한 강이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분단의 아픔을 지닌 곳이며, 최근에는 월북자들이 이곳에서 생사를 달리하는 가슴아픈 장소가 되고 있다. 길이 547.8㎞, 유역면적이 32,920㎢며, 주요 지류인 상류는 현무암으로 된 용암대지 및 화강암·화강편마암으로 된 무산고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백두산과 무산 사이에서 흘러드는 소홍단수나 서두수에서 비롯되고 있다. 두만강 유역은 동계혹한 기후에 속해 있어서 강우량이 적고, 일대 산림의 대부분이 성숙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 연안에 넓은 초원이 발달하여 목축이 성하고, 부령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두만강(중국조선변경기념판이 세워져있다)
두만강(중국조선변경기념판이 세워져있다)
두만강
두만강

■ 만포철교 -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와 북한 만포시를 잇는 총길이 585m의 철교.
길림성 집안시(集安市)와 북한 만포시를 잇는 총길이 585m의 철교로 압록강 위에 걸쳐져 있다.

이 철로는 만포를 지나 강계까지 연결되는 노선으로 매일 하루 한차례 국제열차가 경유하는 곳이다. 북한측 철로가 끝나는 지점 언덕에는 흰색의 만초호텔이 4층 규모의 2개 동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다. 만포철교 입구에는 중국 국경수비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이들의 안내로 철교 중간부분까지의 관람이 허용된다.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 도문 (圖們, TUMEN)
도문(두만강건너 북한의 모습)_나무가 없어 붉게 드러난 산위에 바둑판같이 나뉜 밭을  볼 수 있다연길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도문은 길림성 동부의 중요한 철도교통요충지로 길림시,장춘,하얼빈, 단동강,심양,북경 등지로 가는 여객열차가 이곳에서 출발한다

65년도에 시로 승격되었으며, 현재는 중국, 북한의 국경으로 길림성 최대 변경도시이다. 중국과 북한은 도문대교로 연결되어 그 절반으로 국경을 나누고 있어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중국, 파란색 페인트가 칠해진 부분은 북한으로 정하고 있다. 중국쪽 다리 입구에서 약간의 돈을 내면 다리의 붉은색 끝까지 갈 수 있다. 다리 아래로 두만강과 강건너편의 북한의 산하와 건너편에 지어진 북한의 도시를 볼 수 있다. 1920년 홍범도(洪範圖)가 지휘하는 독립군이 일본군 1개 대대를 격파한 봉오동 전투의 전적지가 주변에 있다.

도문(두만강건너 북한의 모습)_나무가 없어 붉게 드러난 산위에 바둑판같이 나뉜 밭을 볼 수 있다
도문(두만강건너 북한의 모습)_멀리 산 중턱에  '21세기 태양 김정일장군'이라 쓰여진 흰색 글씨가 보인다
도문(두만강건너 북한의 모습) 멀리
산 중턱에 '21세기 태양 김정일장군'이라
쓰여진 흰색 글씨가 보인다
두만강 건너의 북한
두만강 건너의 북한

■ 도문대교(圖們大橋 : 투먼따치아오)
도문대교 연길에서 2시간 정도 미니버스나 관광버스, 택시를 이용하거나 연길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을 가면 두만강너머 북한과 만나는 작은 도시인 도문시가 있다.

이 도문시에 약 100m 길이의 다리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도문대교이다. 이 도문대교는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다리의 중간까지만 중국 영토이고, 나머지는 북한영토에 속한다. 또 정확히 다리 중간에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국경선이 칠해져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곳을 지나다가 잠시 내려서 다리를 한 번 건너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다리 너머로 함경북도 남양시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치는데, 집단 농장과 낮에는 일하는 북한 주민들도 볼 수 있고, 큰 소리로 외치면 상대방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또 도문대교의 국문 전망대(國門展望臺 궈먼쟌왕타이)에 올라서면 두만강 일대와 북한땅이 더욱 선명하게 잘 볼 수 있다. 다리 양 끝에는 세관이 있으며 각각 국경수비대원들이 다리를 지키고 서 있다.


상해 - 유행상품이 거리에 넘치는 국제적인 상업도시 상해 (上海 : 샹하이)
상해 시내상해는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웠던 1842년 남경조약으로 개항된 이후 국내 외의 새로운 문물을 흡수해 온 국제적인 상업도시이다. 영국에의해 중국 최초로 개방될 당시 서양에 개방된 첫 항구도시요 오랜기간의 외국 조계지로 화려한 모습 속에 이방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상해는 1945년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로 재탄생한 이후부터 등소평에 의한 개혁개방정책이 실시되기 전까지는 중국의 여느 도시와 같이 별다른 발전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개방이후 90년대 중앙정부가 이곳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시작하면서 동양의 또다른 홍콩을 꿈꾸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세계적인 경제중심 도시가 되었다.

중국에 관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해는 새로운 눈을 열어주는 도시이다. 상해의 고층빌딩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을 장려하는 시정책에 의해 기발한 디자인으로 상해 스카이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며 과거 조계지로서의 흔적이 남아있는 외탄과 황푸강 바로 건너편 들쑥날쑥 솓은 현대적 고층빌딩은 상해의 과거와 현재를 강 하나사이로 이어주는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6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상해의 총면적은 6,184㎢이며, 12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중 640만 명은 도시의 외곽 지역에서 살고 있다. 역사 속에서 중국의 어떤 도시보다 서양의 문물을 빨리, 쉽게 받아 들인 곳이기에 중국의 다른 도시와는 색다른 문화를 접할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로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동방명주 야경
외탄지구 야경

동방명주 야경
푸동지구


■ 중국 속의 한국, 상해 임시정부청사(臨時政府舊址)
오늘날 우리가 임시정부청사로 알고 찾아가는 곳은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1층에서 짧게 비디오 시청을 하고 나면 2층과 3층의 전시관을 관람하게 된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어서 자료들을 유심히 살펴보는 것 또한 좋은 공부가 될 것이다. 건물 내에 작은 상점을 운영하여 청사 유지비를 마련하고 있는데, 우표, 악세사리, 장식품 등 기념품들을 팔고 있다. 전시실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상해임시정부청사 임시정부청사 내부

■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인 홍구공원(虹口公園 : 홍코우꽁위엔)
노신공원(魯迅公園 )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원 안에는 노신의 묘와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기념관은 노신의 고향인 소흥성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덤에는 모택동이 직접 쓴 '魯迅先生之墓(노신선생의 묘)'라는 글자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의사의 의거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으로, 최근에 윤의사의 항거를 기념하는 기념탑이 세워졌다. 매정(梅亭 : 메이팅)이란 이름의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주위에 '윤봉길 의거현장'이라고 세겨진 비석만이 홀로 서 있어서 단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한다.

윤봉길의사의 폭탄 던진 장소
홍구공원 내 매정(梅亭)
홍구공원 내 매정(梅亭)
홍구공원3
홍구공원

■ 상해의 상징인 외탄(外灘 : 와이탄)
외탄은 상해의 상징이자 상해 현대 역사의 축도이다. 전체 길이가 약 1.7㎞이며, 다양한 국가의 건축 양식이 모여 있어서 '세계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며, 한쪽으로는 넓은 제방을 따라 많은 관광객들이 황포강의 경관을 즐기기 위해 항상 붐비는 곳이다.

황포강 위를 운행하는 여객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도 기념이 될 것이다.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전체 제방을 비추어 유럽 도시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하고, 근처에 위치한 동방명주탑의 불빛이 외탄을 더욱 밝게 한다. 상해의 많은 연인들은 이곳에서 야간 데이트를 즐긴다. 외탄 중간부분에는 큰 동상이 하나 서 있는데, 중국 공산혁명의 원로인 진의(陳毅 : 천이)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외탄의 유럽풍 건물
외탄의 유럽풍 건물
외탄 야경
외탄야경

외탄

■ 중국 최고 높이의 방송 관제탑 동방명주
1991년 7월 착공에 들어가 1994년 10월에 완성한 동방명주탑은 상해의 월스트리트라 할 수있는 푸동 루쟈쭈웨이 금융구에 위치하고 있는 방송 수신탑으로써 총 높이가 468m로 아시아에서 첫번째,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다. 중국의 펄 TV를 운영하는 미디어 그룹인 동방명주 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263M 와 350M에 관광 전망대가 있으며 350M 전망대에는 귀빈실이 따로 있고, 일반 관광객들은 263M 전망대를 이용하게 되어있다. 동방명주탑 내부에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10초만에 전망대에 도착하여 상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탑 주변의 초고층 빌딩들과 황푸강을 바쁘게 오가는 선박들은 상해의 발전상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동방명주탑
동방명주 야경
동방명주 야경
동방명주탑에서 바라 본 푸동강
동방명주탑에서 바라 본 푸동강

■ 남방 정원양식의 대표인 예원(豫園 : 위위엔)
예원상해시 동남쪽에 위치한 중국 전통 정원으로, 명나라의 관료였던 반윤단(潘允端)이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만에 완공한 정원 건축물이다.

북경의 황궁정원 이화원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 황제만 쓸 수 있었던 용문양을 예원에 조각하면서 용발가락을 한개 더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愉悅老親)', 다시말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원 안에는 40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으며, 그 중 예원 입구에 있는 차관 '湖心停'은 가장 유명하여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예원 옆에는 다양한 종류의 독특한 기념품이나 전통 공예품, 먹거리들을 파는 예원 시장이 있는데, 100여년 전에는 예원의 일부였기에 전통적인 건물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최근에 우리나라 모 항공사의 광고에서 나온 상해의 배경이 바로 예원이다.
예원
예원
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