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신화가 있는 그리스, 유럽과 아시아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 고대유물이 남아 있는 이집트.
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으로 지중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그리스.....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 대제국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거쳐간 터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같은 고대 유물의 상징이 남아 있는 이집트 .....

유럽 지중해 문화유적 체험여행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본 이스탄불
신들의 제왕 제우스(zeus),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사랑의 신 에로스(eros) 등 고대 그리스 신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곳,지중해의 짙푸른 바다와 뜨거운 태양으로 지중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그리스에서 그리스만의 특별한 문화를 경험하고...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 위치해 있는 터키는 히타이트에서, 로마, 비잔틴제국, 오스만 대제국에 이르는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거쳐간 이슬람문화를 경험하고...

이집트만큼 풍부하고, 잘 보존된 과거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도 드물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같은 이집트 유산은 고대 유물의 상징으로 현대의 여행자들에게 박물관 이상의 의미를 가져다 준다.
그리스, 터키, 이집트의 유구한 역사문화 탐방은 청소년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탐험을 통하여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큰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기본 내용
일정 여름방학중
참가대상 초등학생 4학년 이상 누구나 가능 (학부모님도 동행 가능)
참 가 비 추후게재
출발인원 최소 출발인원 1 5 명 (모집인원 30명)


2. 탐방코스 안내
일차 도시 일정내역 비고
터키 이스탄블 성소피아 사원 - 보스포러스 해협(유람선여행) - 톱카프 궁전 - 블루모스크
- 돌마바흐체 궁전 - 지하저수지 - 그랜드바자르 - 히포드럼 등 탐방
 
그리스 아테네
에기나섬
아크로폴리스 - 파르테논신전 - 에렉티온 신전 -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 소크라테스 감옥 - 에기나 섬(에개해 크루즈 체험여행) - 무명용사의 비
- 제우스 신전 - 디오니소스 극장 - 니케 신전 - 올림픽 경기장 등 탐방
 
이집트 카이로
기자
룩소르
이집트 박물관 - 아기예수 피난교회 - 모셈기념교회 - 스핑크스 -
피라미드투탕카멘왕의 무덤 - 카르낙 신전 - 룩소르 신전 - 왕가의 계곡
- 하트셉수트 장례 신전 - 왕비의 계곡 - 멤논의 거상 - 룩소르 박물관
 


3. 탐방지역 개요
찬란한 고대문명과 신화의 나라, 그리스
■ 고대 문명의 산실, 아테네
그리스 본토의 남동부 살론만의 아티카 평야에 위치하며, 2개의 강을 끼고 동,서,북의 3방향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은 아테네의 피레우스로 향해 있다.

폴리스는 B. C 8세기에 성립하여 전 6세기에는 세계 최초의 민주정치가 행해졌고 BC 5세기 경에는 최고의 전성기인 페리클레스시대를 맞이하였다.
소크라테스가 활약하고 파르테논 신전이 조성되었다. 그후 마케도니아, 로마의 지배 하에서 학문과 문예의 중심이 중세에는 완전히 쇠퇴하여 학문 높은 고대 유적도 파괴되었다. 그리스 독립 후 아테네는 수도로 되었고 오늘날 그리스의 중심이 되었다.
고대 아테네 시가는 아크로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링크모양의 수도였지만 현대 아테네는 아크로폴리스의 북부, 동부까지 넓은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시의 중심은 신티크마 광장으로 아크로 폴리스 주변을 제외하고는 현대화된 남유럽식의 현대도시임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리스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4백만의 인구가 밀집해 있고 그로 인해 대도시가 가지는 교통,주거문제등을 안고 있는 실정이다. 여름에는 숨막힐 듯한 더위와 대기오염, 혼잡한 교통등으로 여행자들에게 불편을 주기도 하지만, 고대아테네를 상상해 본다면 앞으로 펼쳐진 에게해와 서양과 중동문화가 뒤섞여있는 아테네에서 아테네 만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아크로(Acro, 높은) 폴리스(Polis, 도시국가)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세워졌는데 그 도시의 주신(主神)의 신전을 짓고 고대 그리스 도시의 방어용 요새와 같은 역할을 했다.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로 인해 고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델로스 동맹을 맺고, 그 중심 역할이 아테네로 이동하면서 방어와 종교적 중심축인 신전을 이곳 아크로폴리스에 건축하기에 이른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주요 유적들에는 니케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 에렉티온 신전 등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 1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 아레오바고 언덕
아크로폴리스 아레오바고 언덕
파르테논 신전 4
파르테논 신전

■ 아테네의 최고 관광지, 파르테논 신전
파르테논 신전수천년간 웅장한 자태를 보여 주며 아테네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전쟁과 지혜의 신이자 아테네의 수호신이기도 한 아테네 여신을 모시던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균형 잡힌 건축물로 불리며 도리아 양식의 건축물 중 최고봉으로 꼽히는 이 신전은 규모 면에서 아크로폴리스에서 최대이며 한때 아테네가 폴리스 동맹국 사이에서 제국적인 역할을 담당하던 시기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이용되기도 했다.

B.C 4세기경에 페리클레스가 설계를 하고 조각가 피아디아스가 총 15년이나 걸려 완성한 건축물로 현재 유네스코 고적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 곳은 신전에서 교회로, 그 이후에는 사원으로 사용되다 급기야는 터키인들의 화약고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687년, 베네치아인들이 쏘아 올린 대포로 인해 이 곳은 파괴되기에 이른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예술적인 업적의 성과물이자 찬란했던 과거의 한때를 상징하는 건축물로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전 인류의 귀중한 보물이 같은 인간들에 의해 얼마나 짧은 순간에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6개의 소녀상으로 유명한 에렉티온 신전
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의 하나라고도 알려져 있는 파르테논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축물이 에렉티온 신전(Erechtheion)이다. 기원전 420-39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신전은 도리아식이 가미된 이오니아 양식을 띄고 있어 보기 드문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에렉티온 신전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2m 남짓한 높이로 조각된 6명의 소녀상을 기둥으로 한 주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기둥의 일부는 대영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에렉티온신전
아크로폴리스의 에렉티온신전
에렉티온 신전의 4대 소녀상
에렉티온 신전의 4대 소녀상
에렉티온 신전 4
에렉티온 신전 4

■ 승리의 여신인 니케에게 바쳐진 니케신전
니케 신전아크로폴리스 언덕을 지나 처음 나타나는 불레 문을 통과하면 보이는 것이 승리의 여신인 "니케-우리에게는 영어식 발음인 "나이키"로 더 잘 알려진-의 신전(Temple of Athena Nike)"이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인들과의 육해전을 비롯한 끊임없이 계속되던 수많은 전쟁에서의 승리를 이 곳에서 빌었다고 한다.
규모도 작고 눈에도 잘 띄지는 않을지 모르나 니케의 신전은 건축양식면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아크로폴리스의 수많은 건축물 중에서 처음으로 이오니아식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에 종종 비유되는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은 기둥이 높고 가늘며 세부에 조각장식이 많아 전반적으로 우아하고 경쾌하며 유연한 느낌을 준다.

기원전 5세기에 지어진 이 신전은 17세기 후반, 터키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그리스 독립 후 다시 복원된 것이다.

※ 우리의 생활속에서 만나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에 나이키란 회사의 이름은 승리의 여신인 니케(Nike)의 이름과 같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따르면 니케 여신은 티탄신족이지만 티타노마키아 전쟁때 어머니인 스틱스를 따라 올림푸스 신족의 편을 들어, 승리로 이끌어 주었다. 그녀의 로마식이름은 빅토리아(Victoria)로 이 이름을 쓴 영국 여왕도 있었고, 유명한 폭포 이름도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승리를 뜻하는 '빅토리(Victory)'란 영어단어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3정치가이며 대부호였던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죽은 아내 레기나를 기념하여 161년에 아테네 시민에게 기증한 음악당으로 현재의 음악당은 1951년에 완성된 것이다.

5000명을 수용하는 관객석이 있고 7~9월에는 그리스 고전극, 콘서트, 오페라 등이 주말 21:00부터 열리며, 입장권은 당일치를 음악당 앞에서 판매한다.

■ 소크라테스 감옥(Socrates' Prison)
아테네의 소크라테스의 감옥필로파포스 언덕 필로파포스 기념유적 근처에 위치하며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후 이곳에 억류되어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 제우스 신전
제우스 신전 2고트족의 침입으로 인해 파괴되어 84개 돌기둥 가운데 현재는 15개만이 남아 있는 코린트 양식의 건축물로,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그리스 최대의 신전이다.

제우스에게 바쳐진 신전으로 한때는 규모적인 면에서 그리스 여느 신전들보다 웅장했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과거의 그 융성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많이 파괴되어 있다.

■ 올림픽 경기장
신타그마 광장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이며, 국립정원의 끝, 자피온 남쪽에 있는 말굽 모양의 경기장이다. 이곳은 고대의 판 아테네 대축제가 열렸던 곳으로, BC 331년 판 아테네 대축제의 경기용으로 조성되었다.

당초에는 관객석이 없었고, 로마 시대에 부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대리석으로 된 관객석을 기증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1895년 제1회 올림픽 개최에 대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그리스의 부호 아베로프가 기부금을 내어 고대경기장 모습으로 복원. 좌석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수용인원은 5만명. 선수들이 달리는 트랙은 고대경기장과 마찬가지로 말굽 모양으로 1주거리는 400m. 현재도 각종 육상경기와 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스타디움 앞 광장에는 경기장 복원에 공이 많았던 아베로프의 상이 서 있다.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 대회가 바로 이곳에서 개최되었으며, 현재 이 올림픽 경기장은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 무명용사의 비(Mnimio Aonostou Stratiotou)
무명용사의 비무명 용사의 비(Mnimio Aonostou Stratiotou)는 신타그마 광장 동쪽 아말리아스 거리 정면에 있다. 1923년 터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비로, 앞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은 의장병둘이 30분마다 교대식을 한다.

의장병이 신은 구두밑에는 징이 박혀있는데 걸을 때마다 '딱딱' 소리가 나면서 희한한 폼으로 교대식을 한다. 가만히 서있을 때는 옆에서 기념촬영도 가능하다

■ 에게해 3개섬을 한번에 돌아보는 크루즈의 진수
에게해 크루즈 1아테네에서 에게해쪽을 가다보면 반드시 보아야할 것중에 하나가 고대 그리스의 유적들이 산재해있는 살로니크 만의 섬들이다.
이 섬들로의 크루즈 투어는 하루 일정에서부터 3~4일 일정까지 다양한데 터키와 이스탄불까지 여행을 하는 7일 코스도 있다.
크루즈 운행은 연중 운행을 한다. .

* 에기나(AEGINA)섬
Saronic Gulf에서 가장 큰 섬으로 2개의 고고학적인 유적을 하지고 있는 섬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성인으로 추대된 성 넥타리오스(St Nectarios) 성당은 어시장과 과일시장이 서 있다. 해변에서 내리면 이곳에서 가이드를 동반한 버스를 타고 아파이아 신전(Temple of Afaia)으로 갈 수 있다. 기원전 15세기의 도리아 양식으로 언덕 위에 지어져 있어 주변 바닷가의 풍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그런 다음 성 넥타리오스 성당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시간이 나면 작은 항구도시를 걸어서 돌아보는 것도 좋다.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터키
■ 신비감이 깃들어 있는 곳,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해협에서 본 이스탄불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되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위치한 이스탄불은 2000년이 훨씬 넘는 그 역사에 걸맞게 아주 자연스럽게 동서양 문화와 상업의 교류지로서 역할을 다하여 왔다.

세계를 지배한 3대강국인 로마, 비잔틴, 오스만제국의 수도이기도 했었던 이 곳은 오늘날까지도 도시 곳곳에 과거 번영의 흔적들을 보존해놓고 있음으로서 생생한 역사의 장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200만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도시로서의 면모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고, 또한 서양과 동양의 절묘한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주 묘한 신비가 깃들어 있는 도시라고 하겠다.

이스탄불이 세계적인 국제 도시로 발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때문인데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가 바로 보스포러스 해협이기 때문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은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해협으로 흑해의 자원들이 서방으로 나가는 경제적 지름길이다. 지리적으로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나눠지기때문에 이스탄불은 유럽과 아시아가 공존하는 유일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두고 동쪽의 아시아 지역은 대부분 주거지역이 되고 서쪽의 유럽지역은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가 된다.

유적지가 모여있는 곳은 구시가지인 술탄 아흐멧 지역은 유럽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지역에는 로마/비잔틴/오스만 제국의 궁전과 교회가 모여있고 모두 이지역에 몰려있다.

■ 이스탄불의 상징, 성소피아 사원
성소피아 박물관은 마치 이스탄불에 산재해 있는 여느 모스크와 비슷해 보인다. 간혹 사람들은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고 느낄것이다. 하지만 성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보다 성소피아 성당이라는 가장 최초의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듯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성소피아 성당은 오늘날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기로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 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32년-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소피아 사원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 이 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을 둘러싸는 미나레트가 세워지고, 성당안에는 회칠로 덮여 이슬람교의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다. 회칠속으로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모두 사라졌다. 이후 복원작업이 진행되면서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지만 현재 그 복원작업도 중단된 상태이다. 성소피아성당의 중앙에 서면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장면이 연출되는 역사적인 장소임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본당의 넓이 75m X 70m 로 7,570 평방 미터에 달하고 천장높이는 55.6m, 돔의 지름은 33m에 달하여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드는 높이이며 40개의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구조이다.)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성당
성소피아 사원 2층의 모자이크
성소피아 사원 2층의 모자이크
성 소피아 박물관
성 소피아 박물관

■ 블루 모스크 (술탄아흐멧 모스크 SULTAN AHMET MOSQUE)
블루 모스크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직경이 27.5m, 높이가 43m에 다다르는 술탄아흐멧 모스크는 규모면에서 터키 최대의 것으로, 맞은편에 있는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이슬람 세력의 우위를 상징하기 위해 그 양식을 모방, 발전시켜 건축한 독특한 형상의 회교사원이다.

그 내부의 벽과 기둥이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어 블루 모스크라고도 불리워지고 있다. 돔의 200개가 넘는 조그만 창은 스태인드 글래스로 장식되어 있어 이를 통해 들어오는 아름다운 햇살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 그랜드 바쟈르(GRAND BAZAR)
그랜드 바자르 입구비잔틴 시대부터 현재 그랜드 바자르가 있는 장소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이후 터키가 이스탄불을 장악하게 되면서 1455-1461에 걸쳐 그 곳에는 도시의 경제생활을 부강하게 만들 목적으로 두 개의 주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다. 이후 사람들은 활발한 상업활동을 위한 더 많은 장소를 필요로 하였고 그 결과 주 아케이드의 바깥부분까지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갔다.

오토만 시대를 거치면서 지진, 화재 등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던 이 곳은 몇 번에 걸친 복구 끝에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18개의 출입구와 4천개 이상의 상점들이 들어서 있는 이스탄불의 그랜드 바자르는 세계의 가장 큰 바자르 중의 하나로 터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관광명소로 손 꼽히고 있다.

토요일은 일찍 문을 닫으며 일요일과 종교적 휴일에는 폐점한다

■ 보스포러스 해협 (BOSPHORUS STRAITS)
보스포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다리보스포러스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위치한 해협으로 흑해와 마르마라해를 연결하고 있다. 길이가 약 30km, 넓은 곳의 폭이 3500m, 좁은 곳이 700m로, 물 흐름이 세차서 여기저기에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양측 해안에는 고대 유적지, 그림같이 아름다운 전통적인 터키 마을, 울창한 숲 등이 곳곳에 있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며 음식점, 찻집, 별장 등이 있는 매우 조용한 곳이다. 고대, 중세만 해도 지중해와 흑해간의 거의 모든 상거래는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무역에 있어 보스포러스 해협의 중요성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져 매년 38,000여척의 배들이 이 곳을 통과하고 있다.

■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CE PALACE)
돌마바흐체 궁전가득찬 정원이란 뜻의 돌마바흐체 궁전은 해변을 흙으로 메꾸고 세운 곳이다. 50만 금화, 즉 현재 돈 5억불에 맞먹는 기금으로 건립된 이 궁은 1856년 완공되었는데, 궁의 내부 장식과 방들을 꾸미기 위해 총 14톤의 금과 40톤의 은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3층의 대칭구조로 지어진 궁의 내부에는 285개의 방과 43개의 홀, 280개의 화병, 156개의 다양한 시계, 4톤과 2톤 중량의 샹들리에를 포함한 36개의 샹들리에, 58개의 크리스탈 촛대, 560점 이상의 그림, 손으로 직접 짠 대형 카페트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급격히 악화되어가는 시점에서 이를 만회하고자 서구화를 추진하고 국력 쇄신을 도모하던 압두메짓 1세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초호화판으로 이 왕궁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막대한 건축비 지출은 어려웠던 왕실 재정을 더욱 악화시켜 오스만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 히포드럼(마차경기장 HIPPODROME)
히포드롬 광장본래 이곳은 196년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에 의해 지어진 검투 경기장이 었는데, 4세기 무렵 비잔틴 황제인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검투 경기는 금지되고 대신 말이 끄는 마차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0만명 정도 수용이 가능했다고 하는 이곳은 경마장으로 이용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왕위 계승을 놓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13세기 초 십자군의 침입으로 이 광장에서 비잔틴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는데 대부분의 광장 내 유적이 이때 파괴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곳에는 아주 귀중한 세 개의 기념비가 잘 보존되어 있다.

"디킬리타스(Dikilitas)"라고 불리는 이집트 오벨리스크는 원래 기원전 1550년에 메소포타미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로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헌사한 사원에 세워졌었던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로 당시 왕족들의 일상을 양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이외에도 콘스탄티누스의 기둥이라고 알려진 "오르메 수툰(Orme Sutun)", 아폴로 신전에서 가져온, 세 마리의 뱀이 서로 뒤엉켜 직경 3미터의 황금 그릇을 받치고 있는 형상의 셀팬타인 기둥(Serpentine)이 있다.

■ 술탄들의 거주지, 톱카프 궁전(TOPKAPI PALACE)
톱카프 궁전 입구보스포라스 해협의 높고 평평한 곳에 위치한 7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톱카프 궁전은 1453년, 오토만 제국의 술탄인 메흐멧이 이스탄불을 차지하게 되면서 처음 건설되어 그후 4세기 동안 꾸준히 그 규모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 결과 오늘날 이 곳은 15세기-19세기 초까지의 오투만 건축양식의 변화된 모습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톱카프 궁전은 원래 오투만 제국 대대로 술탄 군왕들이 거처했던 성으로 한때 이 곳에는 술탄과 그 가족 외에도 5만명이 넘는 시중들과 군사, 관료들이 거주했었다고 한다. 옛날 요리를 만들었던 곳은 지금은 도자기 박물관이 되었고 보물고에는 술탄 군왕들이 사용했던 옥좌, 면류관, 무기, 생활용구, 왕비나 여자들이 사용했던 장신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터어키 각지에서 미녀를 모집했던 할무, 신관(후궁의 시중을 드는 남자)의 방도 보존되어 있어 그 흥미를 더한다.

■ 지하 저수저(Yerebatan Sarayi)
지하저수저의 기둥들이스탄불은 많은 공격을 당했었기 때문에 언제나 충분한 물의 공급이 필요했던 도시였다. 따라서 비잔틴 제국 시대에 지하 저수저를 많이 건축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저수저가 성 소피아 성당 맞은 편에 위치한 지하궁전(Yerebatan Sarayi)이다.

물은 이스탄불로 부터 20km 떨어진 곳으로 부터 수로를 통해서 공급했고 기둥과 천장 장식이 화려하게 건축되었기 때문에 이를 지하 궁전(saray : palace) 이라 부른다. 이 건물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336개의 기둥중 거의 모두가 비잔틴 코린트식의 기둥 머리를 가지고 있다. 저수저 전체의 크기는 70m 폭에 길이는 140m 이다. 1985년에서 1988년 사이, 이스탄불 시는 이 저수지를 개축하여 새로 단장하였다. 기둥들 사이에는 나무를 재료로 도보길을 만들고 조명과 음향효과를 써서 관광객을 위한 장소로 만들었다.

석고위의 수심 측정기의 눈금이 기둥머리에 까지 다다른 것을 보면 당시 이 저수지에 물이 얼마나 가득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건물의 양 구석의 기둥의 받침은 메두사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이를 제조한 사람들이 이단을 믿지않는 기독교인임을 알 수 있다. 물 속의 잉어 조각은 장식적 효과를 주는 것인데 이는 오염으로부터 물을 보존한다는 의미를 띄고 있다. 어떤 이들은 비잔틴 인들이 실제 이 저수지에서 물고기를 길렀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파라온의 혼이 살아 숨쉬는 나라, 이집트
■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Cairo)
카이로의 람세스역아랍어로 승리를 뜻하는 카이로는 이집트의 수도이자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가장 큰 도시이다. 헤롯왕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 바구니에 실려 나일강을 떠내려온 모세가 빨래하는 여인에 의해 건져진 북 이집트의 삼각주 어귀 게지라섬에서 나일강의 왼쪽 언덕까지 뻗쳐있으며, 6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수많은 이집트 문명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집트 문화 중심권에서 카이로는 미스르(Misr)라는 아랍이름으로 불리우며, 대도시 카이로는 3개의 행정구역으로 뻗어있다. 동쪽 언덕은 알 칼리오비야(Al Qalyobiyah Governorate)의 행정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안은 알 지자(Al Jizah)알 칼리오비야에 걸쳐있다. 카이로는 전통과 동서의 영향, 고대와 현대가 잘 조화된 도시이다.

그러나 이 도시는 늘어만 가는 이집트의 가난과 급격한 인구팽창으로 인한 문제와 쇄락해만가는 사회기관 시설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현재의 구카이로(Old Cairo, 현지어로 Misr al)는 이전 바빌론이었으며, 로마 비잔틴 시대에 형성된 고대 이집트의 수도 멤피스는 카이로 남쪽 교외에 해당한다. 시가의 중앙을 꿰뚫고 흐르는 나일강은 이집트 문명을 꽃피운 원천이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이집트의 젖줄이기도 하다.

■ 이집트 박물관
카이로 박물관의 투탕카멘의 가면타흐리르 광장의 북쪽, 카이로 최대의 버스 터미널이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근처에 나일 힐턴 호텔이 있다. 정면 연못에는 이집트의 상징인 파피루스와 하이집트를 대표하는 연꽃이 심어져 있어서, 이집트 전부를 상징한다. 이집트 박물관은 처음에 불락지방에 세워졌는데 현재 전시되어 있는 고미술품들이 발견된 이즈마일리아의 궁전으로 옮겨졌다.

그래서 현재 이집트 박물관은 카이로의 타리르 광장에 위치해 있다. 이 건물은 케디브 아바스 헬미 2세의 지배하에 1897년에 착공되어서 1902년 11월 15일에 개관되었다. 107개의 전시실이 있고 1층에는 거대한 조각상이 있고 상층에는 소규모의 조각상과 보석류, 투탕카멘 왕의 유품,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다. 소장품의 수는 10만점...

이 박물관에는 또한 사진실과 넓은 도서관이 있고 전시실은 각각 연대기순으로 분류되어 있다. 그 중 왕족 미이라 전시실에서는 열 한명의 왕과 왕비의 미이라들을 볼 수있다. 해마다 1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이 박물관을 찾고 이 중 이집트인들이 약 50만명에 이른다.

■ 아기예수 피난교회
아기예수 피난교회, The Church of Abu Serga아기예수 피난교회는 요셉, 마리아와 아기예수 성가족이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하던 중 머물던 성스러운 장소에 건축된 것이다. 이들은 요셉이 이 지역 요새에서 일하는 도중에 이곳에 살았을 것이다. 건축 당시 이 교회는 AD 303년 시리아에서 로마 황제 막시밀란(Maximilan)의 손에 순교당한 성자이자 군인인 Sergius와 Bacchus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건물은 5세기에 완공되었으나 약 750년경 Marwan 2세하에서 Fustat의 화재로 불탔다. 8세기에 재건이 시작되어 중세시대까지 꾸준히 재건축이 지속되었으나 이 건물은 아직도 초기 콥틱 교회(이집트 원주민의 기독교 교회)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많은 부분 Hanging 교회와 같은 스타일로 지어진 이 교회에서 가장 고귀하고 오래된 성상은 건물 서쪽 벽에 있는 것이다. 거대한 중앙홀은 두 줄의 기둥들에 의해서 세 개의 본당으로 나뉘어져 있고 Apostles의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는 12개의 독특한 기둥이 있다. 또한 이 교회는 콘스탄티노플과 로마의 종교건축물들과 유사하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명소는 예배당 바로 아래 위치한 지하실이다.

이 곳은 전통적으로 성가족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초기 교회의 잔재가 있다. 이 지하실은 성소(聖所)였다가 후에 더 큰 규모의 교회가 생기면서 지하실이 되었으나 물이 스며들면서 폐쇄되었다. 성가족과 연관되어서 성지로 알려지면서 이 곳을 찾는 신자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흔히 기자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Gizeh)는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져 변두리에 위치하여 사막과의 경계에 홀연히 웅대한 피라미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카이로에서 피라미드까지 외길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거리의 종점에서 왼쪽으로 돌아 비탈을 오르면 쿠푸 왕의 피라미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서 보면 3개의 피라미드가 이웃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먼거리에 있으므로 차를 이용해 돌아보는 편이 편리하다.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무리하여 걸어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대충을 훑어 보아도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기자의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조명빛을 받은 스핑크스 야경
조명빛을 받은 스핑크스 야경

■ 거대한 석조건축 스핑크스(Sphinx)
스핑크스와 피라미드"피라미드와 마찬가지로 기자의 스핑크스도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를 매료시켰다. 1735년 마예는 스핑크스를 '사자의 몸통, 여자의 머리'라고 생각하고 "처녀와 사자가 한 몸을 이룬 12궁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려진 스핑크스는 모두 모래 위에 불쑥 튀어나온 기념비적인 머리의 형태만이 묘사되어 있다. 1816년 카비글리아의 지휘로 시작되었던, 모래 제거 작업은 한때 중단되었다가 1886년 마스페로와 브룩슈의 작업으로 파라오 카프렌의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건축된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기제의 사자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스핑크스 중에 가장 오래되고 큰 것으로 유명한 것은 제 4왕조의 카푸라왕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이다. 이것은 자연 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군데군데 보수되어 있다. 전장은 약 70m, 높이 약 20m라는 거상으로, 그 얼굴은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카푸라왕의 생전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에는 투트메스4세의 석비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 상의 매>를 나타내고,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머리는 사람이고 몸통은 사자인 신화적 존재로서 날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집트가 발상지라고 하는데 그 후에는 시리아, 아나톨리아와 지중해 그리스 본토 등에 전파되었다.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일찍이 제4왕조기(BC2650무렵)에 기자에 있는 왕 카프레의 피라미드 남동쪽에 조각된 대스핑크스로 등장한다. 이것은 왕자신의 상이라 한다. 애초에 왕을 사자로 여긴 이집트의 옛 관념에서 나왔다 하며 왕비도 여성 스핑크스로 표현되었다.

BC2000년대에는 스핑크스는 종종 신, 예컨대 태양신의 화신이라고 믿어졌다. BC2000년대 중엽부터 BC1000년대 전반에 걸쳐 아나톨리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키프로스 등에서도 스핑크스가 중요시되었다는 것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져 왔다. 스핑크스 석상은 문 양쪽에 세워지거나 건조물의 일부로 사용되었으며, 상아의 부조 또는 청동상이 종교색 짙은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들은 모두 날개돋친 상이며, 수호신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리스의 스핑크스는 처음에는 죽음으로부터 지켜주는 신학적 존재로서 액막이 목적으로 방패나 무덤 등에 새겼으나, 뒤에 테베의 전설에 흡수되어 유명해졌다.<그리스 신화>에서 스핑크스는 보통 여성의 얼굴에 날개 돋친 사자상을 한 괴물로 그려졌다. 옛날에는 어린이를 채가고 전사가 쓰러지는 것을 기다리는 사령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반면에 마귀를 쫓는 부적의 도상이기도 했다. 다음 단계에서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害獸라 여겨졌다. 계보상으로는 에키드나와 티폰의 아들 또는 키마이라와 오르토스의 아들이라 한다. 형제인 네메아의 사자가 네메아 땅을 짓밟은 것처럼 스핑크스는 헤라여신에 의해 테베로 보내져 그곳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것은 테베왕가가 범한 죄값이라 했다. 게다가 스핑크스는 땅의 해수로부터 수수께끼를 거는 괴물로 발전했다. "하나의 목소리를 갖고 아침에 네발, 낮에는 두발, 밤에는 세발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내어, 못맞히면 잡아먹었다. 이윽고 오이디푸스(Oedipus)가 나타나 <사람은 어려서 네발로 기고 커서는 두발로 걸으나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으니 세발이다>라고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부끄러워하며 몸을 던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매일밤 2회에 걸쳐 스핑크스 앞에서 음향과 빛의 쇼가 펼쳐진다. 조명에 의해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떠올라보이는 가운데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설명해주는 것이다. 영,독,이탈리아,스페인, 아랍어 등으로 진행되지만 한국어는 없다.

■ 기자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기자의 피라미드를 보지 않고는 이집트를 말하지 말라"
흔히 기자 지역의 3대 피라미드를 보고 하는 말이다. 기자(Giza)는 카이로 시내에서 서쪽으로 13km 가량 떨어져 변두리로 사막과의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다. 이러한 광대한 지형위에 현재 눈을 놀라게 하는 3개의 피라미드가 우뚝 솟아 있다.

여행객들은 차량을 이용하여 먼저 카이로에서 피라미드까지 외길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거리를 달리게 된다. 피라미드 거리의 종점에서 왼쪽으로 돌아 비탈을 오르면 쿠푸 왕의 피라미드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원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 3개의 피라미드가 이웃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현장에 서보면 피라미드 사이의 간격이 상당히 먼거리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팩키지 관광객들은 피라미드와 피라미드 사이를 버스로 이동하기도 한다. 기온이 높을 때에는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있으므로 무리하여 걸어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3개의 피라미드를 대략적으로 둘러보는데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의 북동쪽 모퉁이에 매표소가 있고, 입장권 1매로 3개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까지 관람할 수 있다.

쿠푸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ufu)
세계 최대의 건축물로 지저부의 한변이 230m, 창건 때의 높이는 146.7m였지만, 지금은 꼭대기 부분이 무너져서 137.2m, 부피는 259만 4914 평방미터이다.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석재의 평균 무게는 1개당 2.5톤으로 추정되고, 사용된 석재 숫자는 230만개라고 하고 268만개라고도 한다. 돌을 쌓은 단층의 수효는 원래 210단인데, 지금 남아 있는 것은 203개이다. 쿠푸 왕의 것을 비롯해 이곳 기제의 3대 피라미드는 약 4500년 전인 BC 26세기 경에 건조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가까이 가보면 겉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나 보이지만, 건축할 때에는 화장석으로 겉을 마루리해서 매끄럽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풍화와 약탈로 인해 화장석이 벗겨져서 지금과 같이 되어 버렸다. 내부 관람을 하려면, 9세기 알마문이 뚫은 북쪽 도굴 구멍으로 들어간다. 이 입구의 위쪽으로 약 10m되는 곳에 원래의 입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폐쇄되어 있다. 입구를 들어가면 곧 오른쪽으로 걲여서 높이 약 1.2m의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오르게 되고, 다시 높이 약 8.5m의 큰 회랑을 거쳐 왕의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피라미드의 석축을 오르고, 좁고 가파른 통로를 올라가야 하므로 여성도 바지를 입는 것이 좋다.

카프라 왕의 피라미드(Pyramid of Khafra)

3개의 피라미드 중에 중앙에 위치하는 것으로 쿠푸 왕의 피라미드보다 좀 작은 듯하지만 현재 높이 143m로 지금은 가장 높다. 또한 쿠푸 왕의 것보다 좀 높은 곳에 세워져 있으므로, 보는 방향에 따라서는 좀 더 크게 보인다. 피라미드 가운데 비교적 잘 보관되고, 표면의 화장석도 일부 남아있어 가장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이 피라미드의 동쪽에 신전이 축조되어, 스핑크스 남동쪽에 세워진 아안신전과 참배용 도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도 북쪽의 입구에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 3000년전 고대 이집트로 가는 길...룩소르
룩소르는 카이로의 남쪽에 위치하며 비행기로 2시간, 열차로는 12시간 정도 소요되는 먼 거리이다. 고대 이집트 중왕국의 수도 테베의 일부인 룩소르는 최전성기 1500 B.C.에는 인구가 1천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전해지며, 호머의 '일리아드'에도 그 화려함이 묘사돼 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 신전이 거대하게 그 장엄함을 뽐내고 있으며 오벨리스크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룩소르 신전의 오벨리스크 둘중 하나는 나폴레옹 침공시 프랑스로 옮겨져 현재는 파리의 콩코드광장에 있다.

물론 고대이집트의 많은 유물들은 콩코드 광장만이 아니라 유럽곳곳에 흩어져있어 룩소르는 폐허가 된듯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의 규모는 여전하다. 룩소르는 나일강에 의해 동서로 나눠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뜨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을 지었고, 태양이 지는 서쪽은 주로 묘지나 제전 등을 지었다. 따라서 나일강 서쪽은 사자(死者)의 도시, 네크로폴리스(necropolis)이며 이곳에 그 유명한 왕과 여왕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거대한 계곡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시대 다음인 1580-1085 B.C.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도굴 방지를 위해 깎아지른 듯한 암벽 위에 조그만 구멍을 파고 그 지하에 미로(迷路)로 연결된 보물 창고, 분묘 등이 있고 바위 표면을 뚫어 신전을 지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왕의 묘는 64기가 발견되었고 그중 9기만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투탕카멘의 영면을 지켜볼 수 있으며, 그밖에 투트모스 3세, 세티, 람세스 3, 6, 9세의 무덤을 우리는 만나 볼 수 있다. 계곡을 달리하면 여왕의 무덤, 귀족 무덤, 장인(匠人)무덤 등이 있고, 합셰수트 장제전, 멤논의 거상(Colossi of Memnon)등이 뜨거운 룩소르 땅가운데 남아있다. 왕릉을 관람하고 내려오면서 규모는 작지만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귀족 무덤을 볼 수 있고, 계곡 너머에서 여왕의 무덤과 장인의 무덤들을 관람할 수 있다. 귀족 무덤에서 '델 엘 메디나'(왕들의 계곡을 건설한 노동자 마을)를 지나면 '합셰수트 장제전'(Deir el Bahari)을 만날 수 있다.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나이 어린 투트메스 3세를 섭정했으며 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장제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이다. 15-16세기에는 그리스 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고,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장제전을 뒤로하고 나일강 쪽으로 더 내려오면 폐허가 된 두 개의 거상(巨像)이 나란히 앉아 있는 데 이것이 유명한 멤논의 거상이다. 이는 아메노피스 3세가 1411-1375 B.C.에 세운 것으로 높이가 20m에 달하는 의자에 앉은 모습을 한 거대한 스핑크스(sphinx)이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리 만큼 떨어져 나갔고, 거상 뒤에 있었다는 신전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 왕릉은 도굴꾼들에게 약탈 당하고 유일하게 남은 것이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뜨겁고 황량한 가운데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 사이로 우리는 3천여전의 화려한 풍경은 상상해 내기 어렵지만 흘러간 역사가운데 룩소르는 그렇게 오늘도 많은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 왕가의 계곡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 신왕국 시대의 제18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든 일종의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연대로 추정해 볼 때 BC 1600년에서 BC 1200년까지로 이 계곡의 무덤은 일반 피라미드 양식과 조금 다른 암굴을 파서 만든 분묘로 부활을 위해 미이라가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원의 안식처로 이곳을 처음으로 선택한 최초의 왕은 투트모모스1세로 자신의 묘가 도굴되는 것을 막기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가의 골짜기에 있는 많은 묘소들은 대부분 초기에 도굴당하고 하워드 카터가 1922년에 발굴한 투탕카멘 왕의 무덤만이 원상태로 남아있었다.

모든 묘소는 지금까지 64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람세스 2세의 아들과 람세스 2세 그리고 람세스 3세, 4세, 7세, 11세, 세티 1세, 2세, 아멘호텝 2세, 하셉수트 여왕, 투탕카멘 등의 파라오들이 묻혀 있으며 이중 일부만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 멤논의 거상
원래 이곳은 제 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으로 자연과 고대 여행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을 지키는 2개의 거상만 남아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멤논의 거상은 19.5m 높이의 거상으로 2개의 좌상 중의 하나이다.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아가멤논과는 다른 인물. 북쪽의 입상은 아멘호텝의 어머니 무테무이아와 여왕 티이의 입상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붕괴된 유적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음악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소리가 신이 전하는 소리라고 믿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AD 130년 하드리안 황제를 포함해서 멀리서 많은 방문자들이 방문을 했는데, 이 상이 로마인들에 의해 AD 199년 수리되면서 멈췄다고 전해진다.

■ 하트셉수트 장례신전
핫셉수트 장제전하투셉수트 장제전은 하투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다이 르알바리 석회암 절벽 바로 아래에 3개의 단으로 건축된 장례신전이다.

이집트 초기의 여왕 하솁수트 장례신전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아직 나이 어린 투트모스 3세의 섭정을 하였으며, 이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장례신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이다. 15-16세기에는 그리스 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고,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여왕은 통상에 주력하였고 향료를 찾아서 분트(현재의 소말리아)와 무역했다는 것이 장례신전의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 카르낙 신전
카르낙 신전 입구의  스핑크스아몬대신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르낙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가운데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특히 그 크기에 압도되는 것이 대열주실이다, 입구에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참배의 길, 제1탑문, 제2탑문으로 이어진다.

대열주는 높이 23m, 15m 두 종류의 큰 기둥이 134개나 늘어서 있어 당시의 화려하고 거대했던 신전의 위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카르나크 신전에서는 매일 빛과 소리의 쇼가 신전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쇼는 입구 부근, 제2탑문 앞, 제7탑문 앞, 그리고 성스러운 연못 등 광대한 신전 안을 빛과 소리로 안내하면서 진행된다. 소리도 매우 깊이 있는 스테레오이므로 만족도도 높다.

합셰수트 여왕과 투트모스3세 두 정적간의 오벨리스크가 나란히 남아있는 카르낙 신전은 고대이집트 시대 이후로 그리스정교회와 이슬람 사원등으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어 그 긴 역사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이유로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 룩소르 신전
아몬의 신전고대 테베에서는 많은 제전이 있었다. 룩소르에 있는 룩소르 신전도 이러한 제전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사원 중의 하나였다. 원래 이곳은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대부분은 아멘호텝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세워졌고, 이 사원은 그러한 제전의식을 준비하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제전은 통치자이자 신성한 존재인 파라오와 백성들과의 친목도모에 목적이 있었다. 제18왕조에 이르러 이러한 제전은 11일간 지속되었고, 제20 왕조의 람세스 3세에 이르러서는 27일간 치뤄졌다.

그 시기에 제전은 11,000 조각의 빵과 85개의 케이크, 385 동이의 맥주를 헌납하고 치뤄졌다
룩소신전의 스핑크스
룩소신전의 스핑크스
룩소르 신전 입구의 람세스2세의 석상
룩소르 신전 입구의 람세스2세의 석상
룩소신전의 람세스2세의 두상
룩소신전의 람세스2세의 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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