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문화유적이 숨쉬는 체코, 음악의 정취가 배여있는 오스트리아, 통일 독일의 교훈을 주는 독일.
중세의 문화유적이 고스란히 살아남아 숨쉬는 체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음악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오스트리아...
경제발전의 모델, 통일과정으로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주는 독일....

동유럽 문화유적 체험여행

동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체코는 늘 최고의 찬사를 받는다. 중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프라하의 거리-음악과 인형극,낭만과 역사가 살아 숨쉬는 체코에서 중세의 숨결을 느껴보는 중세문화유적 체험여행.... 세계적인 여러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도시, 일년 내내 콘서트와 오페라가 공연되어 음악 도시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도시로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의 무대로 더욱 알려진 짤츠브르크와 비엔나를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여행... 중세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로맨틱가도와 경제발전의 모델인 라인강의 기적, 다양한 맥주와 우리에게 평화통일 과정에 소중한 교훈을 주는 나라 독일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

이번 탐방은 청소년들에게 보다 넓은 세계탐험을 통하여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큰 꿈을 실현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1. 기본 내용
일정 여름방학중
참가대상 초등학생 4학년 이상 누구나 가능 (학부모님도 동행 가능)
참가비 추후게재
출발인원 최소 출발인원 1 5 명 (모집인원 30명)


2. 탐방코스 안내
일차 도시 일정내역 비고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광장 - 카를교 - 프라하성 - 성비트교회 - 틴교회 - 구시가지광장 - 구시청사 - 천문시계 - 화약탑 - 황금소로
오스트리아 비엔나 짤츠부르크 ■ 비엔나 : 쉔브룬궁전 - 성슈테판성당 - 호프부르크왕궁 - 벨베데레
   궁전 - 중앙묘지 - 슈베르트 박물관 등
■ 짤츠부르크 : 할슈타트 - 모차르트 생가 - 게트라이드 거리 - 미라
   벨정 원과 궁전 등
기타


3. 탐방지역 개요
백탑의 나라, 인형극의 나라, 새롭게 일어서는 체코
■ 동유럽의 파리, 프라하
블타바강의 유람선과 카를교체코의 수도이며, 수많은 역사를 간직한 신비스러운 고도이며, 작은
골목하나에도 중세의 향기가 배어있다. 또 시내 곳곳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양식, 르네상스양식,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남아있다.
프라하에는 시대를 망라한 수많은 중요한 건축물들이 즐비할 뿐만 아니라 1992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과학 유산으로 지정된 역사적 유산이 있는 역사의 중심지이다. 프라하는 EU가 지정한 2000년 유럽 문화의 중심지로 명명된 9개의 도시중 하나이기도 하다.

체코에는 또한 카프카와 쿤데라를 비롯한 위대한 작가들도 많이 있다. 문화유산을 볼 때에도 드보르작과 스메타나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곡가를 낳은 나라 체코에는 지금도 음악이 번창하여 체코인이라면 눈구나 음악가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체코를 직접 여행하게 되면 한 번 정도는 직접 콘서트를 감상하면서 체코인들의 음악열기를 느껴보자.

■ 아름다운 프라하의 휴식처, 카를교(Karluv most)
프라하에 오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유명 관광지로 12세기에 이미 목제교가 같은 위치에 있었으나 강이 번람할 때 붕괴되어 12세기 중엽에 석재교로 대체되었다. 이 석재교 또한 강물로인해 붕괴되어 1357년 카를4세 때 교회 건축가인 피터 팔레지(Petr Parler)가 다시 건축하여 1402년 완공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516m의 길이에 16개의 기둥과 3개의 브릿지 타워가 있다. 구시가지 브릿지 타워는 많은 조각상으로 인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브릿지 타워로 꼽히고 있다. 바로크 시대(18C)에 만들어진 30개의 조각상이 다리를 장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 가장 가치있는 조각상은 Matyas Braun과 E. M. Brokoff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카를교 양옆의 조각상
카를교 양옆의 조각상
카를교의 악사들
카를교의 악사들
카를교와 프라하성
카를교와 프라하성

■ 프라하의 야경의 상징, 프라하 성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프라하성은 9세기에 이미 교회가 있던 자리였다. 11-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바실리카 교회가 성 비타 로툰다를 대체하기 위해세워졌고 이어 성 조지 교회가 재건되었다. 특히 같은 시기에 외각의 돌담이 축성되어 성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예전에 체코 왕이 살았던 곳으로 1918년 체코 대통령의 거주지가 되었다. 로얄 정원과 남쪽 정원, 갤러리, 앤 여왕의 여름 별장은 여름에 개방한다.

프라하성의 대통령궁
블타바강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블타바강에서 바라본 프라하성
프라하성의 입구
프라하성의 입구

■ 성비트 교회
성비트교회 전면총길이 124m, 폭 60m, 천장 높이 33m, 탑높이 100m의 프라하에서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건축물중 하나로 현재 대통령궁으로 쓰이고 있는 프라하성곽안에 위치해 있다. 교회의 건축이 시작된 것은 600여년전인 1344년이나 증개축이 계속되어 체코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29년이다. 또 성당이 완성되었을 때는 초기 비투스 성당의 최초 설립자이자 보헤미아의 수호성인인 웬체슬라스 왕자 사망 1,000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성당의 서쪽입구 청동문에 이 교회의 역사에 대해 묘사되어 있고, 오랜 세월에 걸쳐 건축되어서인지 건물은 중세의 고딕양식을 바탕으로 여러 양식이 혼합되어 있으며 점차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것을 볼 수 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내부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천부적 재능의 체코 예술가들에 의해 완성되었다.

■ 황금소로
카프카가 집필했던 22번가16세기의 작은 집들이 모여 있는 거리로 후기 고딕으로 지어진 프라하성에서 내려오는 길에 있는 좁은 길이다. 동화에 나올법한, 허리를 굽혀야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인데, 원래 이곳은 성에서 일하던 집사와 하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나 이후 연금술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 소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하지만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그 집들 사이에 있는 22번지가 실존주의의 대표적 작가인 카프카가 작품을 집필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벌써 500년 이상이 지났지만 이곳은 여전히 16C 옛날 모습 그대로의 거리 모습을 보전하고 있고, 이제는 서점, 레코드 가게, 기념품점과 같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손님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 바츨라프 광장
바츨라츠 광장과 성 바츨라프 상프라하 국립박물관에서 구시청사 광장으로 이어지는 기다란 길을 신시가지라고 하며, 이 신시가지의 바츨라프 기마상이 서 있는 곳을 바츨라프 광장이라 부른다. 바츨라프는 체코의 영웅으로 칭송되는 인물로, 10세기경 보헤미안 기사들과 함께 적군을 물리치고 체코의 국난을 극복했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프라하의 봄'이 일어났던 현장으로 이곳에서 수많은 체코의 젊은이들이 소련에 대항하여 자유를 외쳤고, 그 흔적으로 당시에 분신한 두 명의 청년 사진과 그들을 기념하기 위해 심어진 나무가 바츨라프 동상 앞에 놓여 있다.

그 앞으로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각종 집회나 콘서트 등이 열리고 있다. 동상 남쪽으로 750m 정도 길게 이어진 길 양쪽으로는 우리의 명동을 방불케 하는 각종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화려한 불빛을 뽐내며 늘어서 있는데, 그 때문인지 이곳은 언제나 많은 인파들로 발딛을 틈이 없다. 역사적이면서도 초현대적인 이 광장은 프라하의 이색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6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은 프라하 여행의 출발지로 이곳에서 카를다리, 구시청사, 화약탑 등 다른 명소들을 도보로 쉽게 찾을 수 있다.

■ 프라하의 심장부, 구시가지 광장
구시가지 광장은 10세기 이래 늘 프라하의 심장부와 같았던 곳으로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이자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각종 건축양식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이 곳은 특히 낮과 밤 가릴 것없이 계속되는 활기찬 분위기와 프라하 역사에 길이 남을 주요사건들의 발생지로써 더욱 잘 알려져 있다.

1422년에 행해진 성직자 Zelivsky의 처형장소이자 1918년 민족 해방을 위한 투쟁 등을 벌인 애환이 깃든 곳이기 때문이다. 집들에 반쯤 가려 광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이 구시가의 상징이라고 할수 있는 틴교회이다. 또한 광장의 중앙에는 보헤미아 독립운동의 투사인 보얀 후스(Jan Hus)의 동상이 서 있는데 동상에는 나찌에 의해 만자 십자상이 새겨져 있고 "프라하의 봄"이 끝나가는 것에 대한 애도의 뜻으로 검은색 휘장이 둘러져 있다.

■ 쌍둥이 첨탑이 인상적인 틴 교회(Tynsky Chram)
틴 교회고딕 양식의 교회로 세 개의 측면 복도가 있으며 쌍둥이 첨탑의 높이는 80m이다. 교회안에는 16~17C에 프라하의 황제 루돌프 2세의 레지덴스에 머물렀던 덴마크 천문학자 Tycho de Brahe의 무덤이 있다.

■ 화약탑
1475년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원래 대포를 보관하던 대포의 요새로 지어졌다가 루돌프 2세때는 연금술사의 연구실과 화약창고로 쓰였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종주조와 연금술에 관련한 기구들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화약탑이라는 이름도 17세기에 화약창고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그 옆의 화려한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회관과는 대조적으로 화약탑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큼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든다.

18세기 중반에 전쟁으로 파손되었다가 19세기 말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된 것이다. 탑 아래 반원모양으로 뚫려 있어서 사람들의 통로로 이용되며, 총 높이나 65m로 현재 내부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프라하 구시가의 상징과도 같은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카를 다리에서 화약탑 까지의 블타바 강 오른쪽 지구인 '구시가광장'에 있는 구시청사는 전형적인 고딕양식의 건물로, 건물벽에 붙어 있는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현재는 건물이 2차 세계대전때 파손되고 천문시계가 있는 70m의 탑만 남아있는데, 매 시간마다 정확히 울리는 천문시계는 천동설에 기초한 두개의 원이 나란히 돌아간다. 또 이곳 안에는 프라하시민들이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는 작은 예배당과 탑내부에 후스파 사람들이 수용된 적이 있는 감옥도 있다.

1437년에 제작된 이 천문시계는 매시각마다 한번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시간을 알리는 이 시계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몰리는데, 두개의 원반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으로 창문이 열리고, 죽음의 신이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의 12제자가 창 안쪽으로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시계의 위쪽에 있는 닭이 운다. 이 시계의 제작자에 대해서는 시계 제작의 거장이었던 미쿨라슈가 만들었다는 것과 15세기경 프라하의 천문학자이자 수학교수였던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누슈가 만들었다는 설에 대해서는 또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의 손재주를 시샘한 누군가가 그의 한쪽눈을 멀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계를 지키다 쓸쓸히 병에 걸려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한때 이 시계도 움직임을 멈췄는데, 이후 몇번의 수리와 1948년에 설치된 전동장치에 의해 지금까지 그 아름답고 신기한 장면을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구시청사
구시청사
구시청사 건물의 천문시계
구시청사 건물의 천문시계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클래식 음악의 선율을 따라서, 오스트리아
■ 왈츠의 도시, 빈
호프부르크 왕궁 야경오스트리아의 수도로 1세기에 로마 제국의 군영지가 축조된 이래 20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650년에 걸친 영광의 도읍지였으며,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오페라그장, 대학등의 웅장한 건물을 간직하고 있다.

푸른 다뉴브의 본고장,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며 영원한 예술의 도시이다. 천년 영화의 자취가 깃든 고색창연한 궁전들과 비엔나 숲, 그리고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고전적인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는 음악의 도시이다.

비엔나는 그곳에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해지는 곳이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성 스테판 성당과 케른트너 거리,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는 시청, 그리고 광장, 수많은 박물관, 국립 오페라 하우스, 하이리겐 슈타트로 잘 알려진 비엔나의 숲은 시의 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계적인 여러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중앙묘지 등 비엔나의 곳곳은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며 일년내내 콘서트와 오페라가 공연되어 음악 도시의 정취를 흠뻑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관광지가 시내중심에 모여있어 거의 도보로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 신시청
중앙의 98m높이의 탑 위에는 3.4m의 기사상이 서있는 신 시청은 구시가에 잇는 옛 시정사를 대신하기 위해 1883 년에 세워진 네오 고딕 양식의 화려한 건물이다.
부르그극장 옆에 있으며 건물 앞에는 시청 광장과 공원이 있다.

■ '아름다운 샘'이란 의미의 화려한 쉔브룬 궁전
199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쉔브룬 궁전은 1612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도중 발견한 아름다운(Schoen) 샘(Brunn)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쉔브룬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축소판으로 설명되곤 한다 .카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매우 화려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외부 건물은 크림색이며 내부는 18C 후반에 마리아 테레지아가 수집한 동양의 자기나 칠기, 페르시아의 세밀화 등으로 우아하고 호화롭게 로코코식으로 꾸며져 있다. 왕궁정원은 약 1.7㎢에 달하는 바로크 양식으로 단장되어 있으며, 아름다운 다수의 분수와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44개의 대리석상들이 있다.

그외에도 그리스 신전 양식의 글로리에테, 궁정마차 박물관, 온실 등이 있다.

쉔브룬 궁전

쉔브룬 궁전
쉔브룬 궁전뒤 정원에 조성된 연못
쉔브룬 궁전뒤 정원에 조성된 연못


■ 오스트리아 황제들이 기거했던 호프부르크 왕궁
호프부르크 왕궁현재는 대통령 공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호프부르크 왕궁은 비엔나 시민이나 일반 관광객들이 굉장히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1220년경에 지어졌으며 거의 100년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호프부르크의 건물은 시대별로 거처했던 군주들에 의해 다양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예배당은 15C 중반, 아말리엔호프, 스탈부르크는 16C경, 레오폴트의 저택은 17C, 마리아 테레지아 저택은 18C, 네우 브르그는 19-20C에 만들어 졌다. 외관은 장엄하며 매우 간결하며, 주변의 조망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 황제가 기거했던 곳으로, 지금은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되고 있다.

미카엘 광장 방향의 반원형 문은 조각들과 두 개의 큰 분수로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에 위치한 아치는 금도금한 청동살들이 장식되어 있다. 케른트너 거리에서 조금만 걸어 들어오면 바로 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비엔나 시민들에게 있어서 매우 친숙한 공간이다.

■ 빈의 상징, 슈테판 성당
137m에 달하는 첨탑이 있는 거대한 사원으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의 건물이다. 그 웅장함에서 신에 대한 간절한 믿음과 노고의 땀을 엿볼 수 있다. 빈의 상징으로 65년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약 1359년에 완성되었다.

사원의 내부는 석조 부조의 설교대가 있으며,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1450년에 만들어진 지하묘지에는 흑사병으로 죽은 약 2,000구의 유골과 합스부르크 왕가 유해 가운데 심장 등의 내장이 보관되어 있다.

빈의 가장 번화한 거리인 케른트너 거리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모짜르트의 결혼식이 바로 이곳에서 있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성당앞에는 오페라 호객꾼들과 다양한 퍼포먼스들이 진행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있다.

근처 카페에 들어가 비엔나 커피라고 알고 있는 멜랑쥐를 한잔 마셔보는 것도 비엔나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성슈테판 사원
성 슈테판 사원
성 슈테판 사원 내부
성 슈테판 사원
성 슈테판 사원

■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는 중앙 묘지(일명 음악가의 묘지)
빈 시당국이 1894년에 시내에 흩어져 있는 다섯 군데의 묘지를 한데 모아 조성한 것이다.
240ha나 되는 광대한 녹지대 안의 약 35만 기의 묘소에는 약 300만의 영혼이 고이 잠들어 있다.
악성들이 잠든 제 32a 구역은 정문을 지나 가로수길을 200m 가량 들어가서 왼쪽편에 있으며,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브람스 등의 묘와 모차르트의 기념비가 있다.

베토벤 묘비
요한 스트라우스 묘지
요한 스트라우스 묘지
모짜르트의 묘지
모짜르트의 묘지

■ 옛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슈베르트의 생가
슈베르트의 생가 내부슈베르트(schubert)는 1797년 비엔나의 누스도르퍼슈트라세 54번가의 2층집에서 14명의 아이들 중 12번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생가는 그가 살았던 모습 그대로 재현되어 슈베르트를 만나러오는 이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ㄷ자형의 건물이 마당을 안고 서 있다. 슈베르트가 살던 집은 2층으로 넉넉한 공간이지만 17명의 식구가 살기에는 아주 비좁았을 것이다.

이곳은 슈베르트 기념관으로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 15분, 13시부터 16시30분까지 문을 여는데, 월요일은 휴관한다. 그는 이 집에서 살면서 지금은 슈베르트의 산책로로 명명된 계단과 길을 따라 내려와 마르크트가세 40번지에 있는 리히텐탈 성당에 다니면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했다

■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벨베데레 궁전
벨베데레 궁전 상궁의 정면사보이 오이겐 왕자의 여름저택으로 Lukas von Hidebborough 에 의해 건축되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중 하나로, 내부에는 회화관이 있다. 사보이 오이겐 왕자는 1683년에 투르크족을 물리치고, 1704년에는 블렌하임에서 루이 14세의 군대를 물리쳤다.

상부 벨베데레는 19·20C 예술 박물관으로 2층의 붉은 대리석 방에는오이겐 왕자의 승정이라는 제목의 프레스코화가 있다.
하부 벨베데레는 바로크 미술 박물관으로 대리석 타일과 미술 작품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Orangery 에 있는 오스트리아 중세 미술관에는 고딕시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궁전의 정원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푸스 산의 수호 동물인 스핑크스 상이 있다.
벨베데레 상궁
벨베데레 상궁
벨베데레 상궁앞의 조형물
벨베데레 상궁앞의 조형물
벨베데레 상궁과 하궁 사이의 정원
벨베데레 상궁과 하궁 사이의 정원

■ 모짜르트의 고향, 짤츠츠부르크
미라벨 정원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요새짤츠부르크는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로운 화합의 도시로 모짜르트의 탄생 도시이며 영화 'Sound of Music'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빈에서 서쪽으로 300Km (차량으로 3.5시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오스트리안 로마로 알려진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어, 여행자들은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입을 모은다. 소금의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짤츠부르크는 696년 웜스의 루퍼트 주교가 바바리아 공작인 테오도로부터 선물받은 '주바붐'이라는 황량한 로마 땅에 대주교가 관할하는 짤츠부르크라는 도시를 세웠다. 수세기에 걸쳐 짤쯔부르크는 바바리아의 공작들로부터 라이헨할 소금 광산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소금광산은 '명성과 부'라는 두 번째의 선물은 안겨준 셈이다. 추기경들이 짤츠부르크를 작은 로마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으며, 삼면이 숲으로 둘러싸이고 부드럽게 휘어진 잘자흐강을 따라 즐겁게 산책을 할 수 있도록 집들을 배열하였다. 짤츠부르크 교외의 아름다운 마을들, 미라벨 정원에서 올려다 보는 호헨 짤츠부르크 성의 멋진 경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트라이드 거리, 그 어떤 도시도 짤츠부르크만큼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은 없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가 마을...할슈타트
할슈타트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세계적인 유산으로써, 오스트리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이다.

할슈타트는 그문덴(Gmunden)지역에 위치한 그리 크지 않은 마을로서, 고사우(Gosau)호수의 남서쪽호수변 플라센(Plassen Mount. ; 해발1,953미터)의 산기슭 해발 508미터, 59.80 ㎢ 면적에 자리잡고 있으며, 인구 1,153명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다. 알프스산맥의 거친 암반으로 이뤄진 산과 깨끗한 호수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자연경관에 조용히 자리잡고있어, 완벽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모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랜 마을의 역사로부터 나오는 오스트리아의 전통과 문화를 즐길 수 있다.
할슈타트 할슈타트 할슈타트

■ 모짜르트 생가
게트라이드가쎄 모짜르트 생가세기의 작곡가이자 음악의 신동이라 불리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1757년 1월 27일)가 태어난 곳으로 짤쯔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이다.

모짜르트의 가족은 그가 열일곱살이던 1773년까지 이곳에서 살았는데, 현재 이곳에는 모짜르트가 사용했던 바이올린과 그의 자필 악보, 가족 초상화, 서신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포함해 매년 수천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다.

1층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하던 침대, 피아노, 악보 등이 2층에는 모차르트와 그의 오페라, 3층에는 모차르트의 가족들, 4층에는 짤쯔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 짤츠부르크의 역사가 한 눈에 들어오는 게트라이데 거리
게트라이드가세의 사람들잘츠부르크 구시가지에 있는 게트라이드 거리(Getreide Strasse)는 잘 츠부르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유명 쇼핑거리이다. 예쁜 간판으로 유명한데,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가게가 어떤 물건을 판매하는 곳인지 알 수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그 중에서도 잘츠부르크의 모자와 전통 의상을 팔고 있는 가게가 볼만하며 최고의 맛으로 유명한 모짜르트 쵸콜렛은 친구와 가족들을 위한 선물로 인기있다. 이 거리에는 잘쯔부르크 최고의 명소 모짜르트 생가가 있는데, 노란색의 6층건물로 늘 사람들로 붐빈다. 건물 앞쪽의 노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도 큰 재미를 준다.

■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유명해진 미라벨 정원
볼프 디트리히 주교는 성직자이면서도 평민의 딸이었던 살로메 알트를 너무나 사랑했었다. 주교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난으로부터 자신의 사랑을 지켰는데, 살로메와의 사이에서 10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며 1606년 그 가족들을 위하여 잘자츠강 주변에 알텐아우라는 궁전을 지었다. 물론 카톨릭 종교단체와 시민들의 반응은 차가웠고 말로는 쓸쓸히 요새에 감금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후대의 주교들은 이 일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이 궁전과 정원의 이름을 미라벨(아름다운전경)이라고 바꾸었지만 여전히 그 아름다움은 남아있다. 미라벨 궁전 앞에 펼쳐져 있는 미라벨 정원은 잘츠부르크 시내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으로 예전에는 궁전에 속해 있어 일반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완전히 개방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보여주는 미라벨 정원은 아름다운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 꽃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정원 서쪽에는 1704년에서 1718년 사이에 만들어진 울타리로 둘러진 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영화 'Sound of Music'의 무대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이 곳에서 호엔잘츠부르크요새의 전경을 올려다 볼 수 있다. 중앙역에서 라이너 거리 (Rainerstr)를 따라 조금만 내려오다 보면 바로 오른편에 있다.

미라벨 궁전(Mirabell Palace)
1606년에 지어진 궁전으로 모짜르트의 콘서트를 비롯해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유명인들과 관계된 행사들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이곳은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을 선사할 식장으로도 사용되곤 한다
미라벨 정원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요새
미라벨 정원에서 바라본
호엔잘츠부르크요새

미라벨정원
미라벨정원의 철문-도레미송이 흐르던 곳
미라벨정원의 철문
- 도레미송이 흐르던 곳


중세고성과 다양한 맥주를 경험할 수 있는, 독일
■ 독일 역사의 현장, 베를린
‘새끼곰’ 이란 뜻의 'Bearlin'을 따 이름지어진 베를린은 오랫동안 독일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해 왔다. 베를린의 시구역은 동서 20km, 남북으로 30km의 비교적 넓은 약 870km2로서, 서울면적의 1.4배나 되는 면적을 지니고 있다. 면적으로 볼 때에는 로스엔젤레스, 런던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에 속한다. 크게 두 지역으로 양분해 보면서베를린 지역은 대부분 녹지대로 이루어져 있는 교외 지구가 모여서 생긴 공동체이고, 동베를린은 시의 구시가지를 뜻한다.

독일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엘베강의 지류와 슈프레강의 합류점에 있는 독일의 수도이다. 즉, 베를린은 바르샤바와 베를린 주곡에 있으며, 가항하천인 슈프레강이 흐르면서 하펠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문화적인 세계 도시로서도 명성이 나 있는 베를린은 베를린 필 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건립한 베를린 앙상블로도 역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중심부로 들어 갈수록 울창한 숲과 호수로 둘러 싸여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 기능을 하고 있다.

베를린 중앙으로 흐르는 슈프레 강을 중심으로 하는 브란덴 부르크문 서쪽에 나 있는 티어 가르텐(Tiergarten)과 같은 공원들과 수많은 나무 숲이 베를린을 전원의 도시로 만들어 주고 있으며 호수와 강, 운하가 곳곳에 퍼져 있는 젊은 이들의 문화, 예술 활동이 활발한 도시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 브란덴부르크 문
1789년 랑한스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파르테논 신전의 프로필라이아를 본 땄다. 이후 1973년 샤도우가 만든 이륜 사두마차를 위에다 다시 세운 이 문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건조물로, 도리아식 기둥이 나열된 독일 고전주의 양식의대표작이다.

도시의 영광을 상징하는 승리의 표지였으나 동·서독 분단시기에는 동서분할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독일 분단 이후 접근이 금지되었다가 1989년 독일 통일 이후 다시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 카이저 빌헬름 교회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기념교회로 황제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1891-1895년에 세워졌다. 전쟁의 파괴성을 알리기 위해 파괴된 채로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탑과 새로 지어진 다각형의 교회당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매우 아름다우며, 주말에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도 열린다

■ 프로이센의 승리를 기념하는 전승기념탑
전승기념탑은 1864년에서 1873년에 걸쳐 Johann Heinrich Strack의 설계로 세워졌다. 이 탑은 프로이센이 덴마크(1864), 오스트리아(1866), 프랑스(1870/71)와의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873년 9월 2일에 화합의 상징물로 완공했다.

전승기념탑은 높이가 69m로 잘 다듬어진 사각의 붉은 화강암 위에 원주가 에워싸듯이 있고 맨 꼭대기에 12m크기의 동으로 된 조형물이 있다.
원주안에는 285개의 나선형 계단이 있어 53m높이의 플랫폼에 오를 수 있으며, 여기서는 티어가르텐(Tiergarten)과 베를린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 제국의회 의사당
제국의회 의사당은 1871년 독일이 제국의 형태로 하나의 국가가 된 기념으로 처음 지어졌다. 그러나 1933년 독일 공산주의자들이 불을 지르면서 수난이 시작되었다. 제국의회 의사당 옥상에는 태양열 발전뿐만 아니라 햇빛을 조명으로 이용하기 위한 투명돔이 설치되어 있다.

투명 돔 안에는 거울 기둥들이 다양한 각도로 설치되어 있고, 여기서 반사된 햇빛이 본회의장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최근에 설계한 이 돔은 통일 독일의 상징이자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상징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되었다.

■ 포츠다머 광장
베를린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포츠다머 광장은 ‘라인 강의 기적’에 이어 독일이 만든 또 하나의 기적으로 꼽힐 만한 곳이다.

전쟁과 베를린 장벽으로 우리나라의 비무장지대처럼 폐허로 남아 있었으나 1991년, 국제 도시 계획 아이디어 공모전 이후 다럼러-크라이슬러사와 일본의 소니사를 비롯해 최고급 쇼핑 몰, 식당가, 카지노, 영화관, 아파트와 사무실 등이 들어서면서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가 되었다.

■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중심지, 뮌헨
인구 약 130만명의 뮌헨은 독일 제 3의 도시이자, 남부 독일의 중심도시이다. 12세기 이래 700년동안 독일에서 가장 화려한 궁정문화를 꽃피웠던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였으며, 16세기 이후에 번성하던 르네상스와 바로크,로코코,양식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남아있다.

바이에른은 풍부한 문화적 역사적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의 매력으로 관광객들을 끌고 있다. 독일의 가장 높은 산 추크슈피체(2,962m)가 있는 알프스와 킴 호수와 쾨니히 호수와 같은 대단히 아름다운 호수들이 있는 알프스 앞지역, 국립공원이 있는 바이에른 숲, 프랑켄의 쥐라기 지대, 피히텔 구릉지, 슈타이거 숲, 슈페스아르트와 많은 아름다운 경치들은 관광객들에게 휴식 및 여가와 자연을 즐기는데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산들은 자전거 여행자들의 낙원이며, 알프스 기슭의 호수들과 프랑켄 지방에서 마인-도나우 운하의 건설 과정에서 생겨난 새로운 인공호수들은 휴가자들에게 수상 스포츠에 빠져들게 한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으나, 시가지는 전전의 모습 그대로 홀륭하게 재건되었다.
온화한 기후와 밝은 거래, 명랑한 시민의 표정 등으로 삶이 약동하는 이 도시의 명물은 역시 맥주이다.

■ 글로켄슈필로 유명한 신 시청사
뮌헨 신 시청사 건물뮌헨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마리엔 광장에 있는 신 시청사는 1867~1909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건축된 것으로 네오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시계탑은 글로켄슈필이라 하여 매일 11시(5월~10월에는 낮12시와 저녁9시)에는 사람크기만한 큰 인형들이 나와 인형극이 펼쳐진다.

시계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데 올라서면 뮌헨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뮌헨의 상징인 신시청사
뮌헨의 상징인 신시청사
신시청사의 시계탑
신시청사의 시계탑
신시청사의 글로켄슈필
신시청사의 글로켄슈필

■ 바이에른 왕의 여름별궁, 님펜부르크 성
시가지 북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궁전으로 건물의 폭이 700m가량이나 되며 독일 바로크식 건물로는 가장 큰 성이다.

1664 ~ 1748년에 건축되었으며, 그 후에 정원과 연못,분수 등이 차례로 설치되면서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완공되었다. 200ha나 되는 드넓은 정원과 궁전의 내부, 아말리엔부르크, 마차 박물관 등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멀리서 본 님펜부르크 성 전경
멀리서 본 님펜부르크 성 전경
님펜부르크 성 입구
님펜부르크 성 입구
님펜부르크 성 정면
님펜부르크 성 정면

■ 호프브로이하우스
바이에른 왕실의 황실용 양조장이었던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맥주 홀이다. 즉, 호프브로이하우스란 궁정 맥주 양조장을 의미하는데 현재 호프브로이하우스의 위치가 옛날의 양조장 자리였던 것이다.

이곳은 히틀러가 때때로 이 비어홀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군중 집회를 가지면서, 연설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저서인 ‘나의 투쟁’ 이라는 서적만 보더라도 1919년 가을에 나치스의 전신인 독일 노동장 집회를 여기에서 열었다고 쓰고 있으며, 1920년에는 이곳에서 히틀러 자신의 계획을 공고하기도 했다. 이 대형 맥주홀은 1층과 2층을 합쳐 약 20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데, 1층은 일반 독일식 전통맥주 하우스로서 쓰이고 있고, 2층은 저녁식사를 겸해서 일반인들이 사교춤을 출수 있는 무도회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호프브로이하우스에 들어서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 앉을 자리가 없을 때도 많다.
무대에서는 덩치가 산만한 아리따운 독일 여성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폴카춤을 추기도 하고,악사 아저씨 부인이 한국인이라 아리랑, 서울의 찬가 등의 낯익은 노래들도 들려준다. 때에 따라서는 명랑한 바이에른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건물 안에 온통 메아리치며 모든 이들이 함께 흥에 겨워 노래를 합창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대개 뮌헨을 들린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저녁 한때를 보내며 관광객들로 자리가 가득 매워진다.

■ 마리엔광장
이곳은 시내 주요 도로의 기점이자 구시가의 중심 광장이다.

이 지역의 보행자의 거리(Pedestrian zone)에는 아름다운 패션점들과 레스토랑, 교회, 시장 등이 밀집되어 있다. 이 광장의 동쪽으로는 신시청사가 펼쳐져 있는데, 이 시청사는 1867∼1909년에 세워진 네오 고딕식 건물로 종탑과 벽면의 인형 시계인 글로켄슈필로 유명하다.

시청사 건물의 인형시계는 뮌헨의 명물로 매일 11시에 음악이 울려 퍼진다. 처음에는 서글프고 비장한 음악이 연주되고, 잠시 끊어진 음악소리는 용솟음치는 음악으로 바뀐다. 그리고 다시 잠시 끊었다가 이제는 축제풍의 음악으로 바뀐다. 이때 시계 아래에 있는 8개의 인형 무용수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광장의 서쪽 편에는 쌍탑을 가진 15세기 고딕식의 프라우엔 교회와 독일 최초의 르네상스식 건물인 성 미카엘 교회 등이 있으며, 그 맞은 편에는 아주 오래된 성 피터 교회(Alte Peter)가 있다. 그리고 이 광장의 곧 바로 남쪽에 있는 것이 빅토리아 마리엔 마르크트 옥외 시장이다.

홍백의 파라솔과 흰색 텐트가 길게 늘어서 있는 노점에는 야채, 과일 가공품들이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다.
광장에서 서쪽으로 달리는 카우핑거 거리는 보행자 천국으로서 유명한 상점가이다. 테라스엔 꽃들이 만발해 있는 이 광장에는 고딕양식의 건물에 꽃으로 장식되어 있어서 매우 아름답다. 마리엔 광장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분수대도 있고, 주위에는 큰 교회들과 상점과 카페들이 많아 휴식처로서는 그만이다. 한가운데는 시의 수호신인 마리아의 탑이 서 있으며, 광장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기만 하다.

특히 중세풍의 카페나 제과점 선물점들이 즐비하여 쇼핑을 하기에도 적절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