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청소년 화랑단


 
서울-일본 동경까지 1,157km를 50일간의 대장정을 통한 한 · 일 민간교류 및 우호증진

 

조선통신사 404년을 기념하여 조선통신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옛길을 한일 양국 민간인들이
함께 걸으면서 선린우호관계와 평화의 필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

 

목적

기본현황

참가방법

조선통신사 여정

국내일정

일본일정

조선통신사 이야기

사진보기

 

[제4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는 약 400여년 전 우리의 옛 조상들이 한ㆍ일 선린우호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조선통신사를 파견한 그 숭고한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ㆍ일 민간차원에서 조선통신사 옛길을 답사하여 21세기 한ㆍ일 우호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친선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사)한국체육진흥회 (한국걷기연맹)와 (사)일본걷기협회가 공동으로 1607년 조선통신사를 파견한지 400년을 맞는 2007년, 2009년, 2011년, 2013년에 이에 5번째로 오는 2015년 4월1일부터 [제5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를 실시하여 걷기문화를 문화적 유산에 결합하여 더욱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목  적

구분

안내사항

목  적

[제5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는 약 400여년 전 우리의 옛 조상들이 한ㆍ일 선린우호 관계를 이루기 위하여 조선통신사를 파견한 그 숭고한 정신과 문화적 유산을 계승 발전시키고자  한ㆍ일 민간차원에서 조선통신사 옛길을 답사하여 21세기 한ㆍ일 우호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친선관계를 형성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사)한국체육진흥회(한국걷기연맹)와 (사)일본걷기협회가 공동으로 1607년 조선통신사를 파견한지 400년을 맞는 2007년에 이에 5번째로 오는 2015년 4월1일부터 [제5차 21세기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를 실시하여 걷기문화를 문화적 유산에 결합하여 더욱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기본현황

구분

안내사항

일  정

 ☞ 서울에서 부산까지  : 524 Km
  
   2015년 4월 01일 (수) ∼ 4월 21일 (화) (21일간)

 ☞ 부산에서 일본 동경까지  : 633 Km
   
  2015년 4월 22일 (수) ∼ 5월 20일 (수) (29일간)

걷기구간

서울 경북궁 → 광화문 → 양재 → 판교 → 용인 → 양지 → 죽산 → 충주 → 수안보 →
문경 → 예천 → 안동 → 영천 → 경주 → 울산 → 양산 → 부산
→ 대마도 → 일본 동경

참가대상

남녀 구별 없이 신체건강한 사람 누구나

공    인

제공내용

1. 참가자 전원에게 국제시민스포츠연맹. 한국걷기연맹 완보증 및 구간 완보증 수여
2. 참가자 전원에게 국제시민스포츠연맹. 한국걷기연맹 인증 걷기기록카드 제공
3. 학생은 봉사증 수여
4. 참가자 전원에게
[아식스스포츠] 기념티셔츠 제공 (단,1일 참가자는 제외)

참가자혜택

지속적으로 각종 걷기정보 및 걷기대회 정보제공 및 추후 걷기지도자 강습회 참가비 할인 혜택

주  최

일본조선통신사연지연락협의회

주  관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회

후  원

언론사후원

  부산일보, 국제신문, 경남도민일보, 경북일보, 경상일보, 양산시민신문
울산매일신문사, 충청일보 등

지방자치단체
후  원

 용인시, 충주시, 문경시, 예천군, 안동시, 군위군, 의성군, 경주시, 양산시, 부산동래구청 등

협  조

구간 지역내 지방자치단체, 경찰서, 보건소,  언론사 등

참  여

한국체육진흥회 충남지부, 경북지부, 대구지부, 한국청소년화랑단

공식협찬

취  재

동아일보사, 아사히신문사, 일본NHK, 재일민단신문, 기타 지역 신문 및 방송사

참가문의

☞ 사단법인 한국체육진흥회 [21세기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회] 사무국  
    
(한국걷기연맹 / 한국시민스포츠연맹)   
   서울시 중구 광희동 1가 89-1 금호트윈오피스텔 2동 702호
    ☎ (02) 2272-2077, 2274-7077 / 팩스 : (02) 2272- 2078
    홈페이지 : www.walking.or.kr   /   E-mail : kapa7077@korea.com

한국청소년화랑단  www.ihwarang.or.kr   
   총대장   유 제 천  (전화)
2235-2673, 2675  /  010-5307-2676

 

 ☞  참가방법 및 구간별 참가정보 안내

구분

안내사항

참가경비

구 분

숙박장소

소 요 경 비

숙박비

- 걷기구간의 각종 숙박시설
  
(아래 세부일정표 참조)

현지금액 기준

- 숙소는 개별로 자유롭게 정해도 관계없습니다.

 1. 구간참가자는 예정된 일정표에 의해 현지로 직접 개별 참가하면 됩니다.
    - 교통비는 각자 부담입니다.
 2. 숙식비는 각자 부담입니다.
 3. 전기간 및 국내구간, 일본구간 참가희망자는 별도 문의

참가방법

1. (사)한국체육진흥회 www.walking.or.kr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회 사무국, 
    한국청소년화랑단
전화, 메일 등 신청 가능
2. 1일 이상 구간참가자는 사전에 참가 희망구간 신청접수
3. 개별 현지 참가

4. 개인 또는 각종 단체 (학교,회사별,동호인 등)별로 참가할 수 있습니다
5. 개인별 구간 참가시 식사 및 숙박을 주최단체에 신청하지 않고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방법

참가 구분

참가 구간

참가일시

참가방법

한국일본 전구간 참가

서울→일본 동경

4.1∼5.20

- 신청서 작성

국내 전구간 참가

서울→부산

4.1∼20

- 신청서 작성

국내 일부 구간 참가

서울→부산 구간중 일부 구간

자유

- 신청서 작성 후 구간 선정

1일 이상 단기간 참가

서울→부산 구간중 자유 선택

자유

- 신청서 작성 후 구간 선정

일본 전구간 참가

일본 전구간

4.22∼5.20

- 신청서 작성

신청기간

수시 참가자 모집

구간안내

(사)한국체육진흥회 및 한국청소년화랑단 홈페이지에 구간 안내 참고

활동안내

1.(사)한국체육진흥회 및 한국청소년화랑단 홈페이지를 통해 매일매일 걷기소식 소개
2. 별도의 카페를 개설하여 걷기활동 내용을 소개 예정

 

 ☞  조선통신사 여정로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국내 일정 안내

일시

도보 구간

출발지

도착지

도보거리

숙박장소

4월  1일(수)
4월  2일(목)
4월  3일(금)
4월  4일(토)
4월  5일(일)
4월  6일(월)
4월  7일(화)
4월  8일(수)
4월  9일(목)
4월 10일(금)

경복궁→숭례문→한강진→신원→정토사
정토사→판교→직곡→용인
용인→양지→백암→죽산(죽주산성)
죽산→광암→석원→무극→곤지애 (생극)
곤지애→천곡→검단점→달천진→충주
충주→단월역→수회→수안보
수안보→안부역→신혜원→동화원→문경
문경→마포원→신원→굴우→유곡→호계
호계→용궁→유천→예천
예천→풍산참→안동

경북궁
양재(정토사
)
용인시청
죽산산성
곤지애
충주(충주감영)
수안보(표지석)
문경종합온천
호계(성보촌)
예천군청

양재(정토사)
용인시청
죽산산성
죽산
충주(충주감영)
수안보(표지석)
문경종합온천
호계(성보촌)
예천군청
안동시청

27 Km
29 Km
34 Km
23 Km
38 Km
21 Km
22 Km
26 Km
30 Km
35 Km

정토사
SKY모텔
건강나라
서울파크

글로리아
FEEL모텔
성보촌

파라다이스
아로마모텔

4월 11일(토)

 쉬는날 (안동 하회마을 등 문화유적 탐방 - 안동하회마을 등)

4월 12일(일)
4월 13일(월)
4월 14일(화)
4월 15일(수)

안동→일직→의흥
의성→청로역→의흥
의흥→신령→영천
영천→아화→모량→서악→경주

안동시청
의성군청
의흥면사무소
영천시청

의성군청
의성면사무소
영천시청
경주부동헌

31 km
26 Km
41 Km
39 Km

테마모텔
 
FEEL모텔
홀인모텔

4월 16일(목)

쉬는날 (불국사, 석굴암, 감은사지, 대왕암, 첨성대, 경주박물관 등 경주 문화유적 탐방)

4월 17일(금)
4월 18일(토)
4월 19일(일)
4월 20일(월)

경주→입실(외동)→외동
구어→울산좌병영→울산
울산→웅촌→용당창→웅상(양산)
웅상→소산역→동래읍성→동래구청

경주부동헌
구어
울산광역시청
웅상초등학교

구어
울산동헌
웅상초등학교
동래구청

21 Km
26 Km
30 Km
25 Km

홀인모텔
중앙관광
발리모텔
 드림모텔

4월 21일(화)

쉬는날 (동래 문화유적 탐방 - 태종대 등)

4월 22일(수)

부산국제여객터미널 출발→ 일본 대마도 행

 

국내 구간 거리 합계

 

총 도보거리

524 Km

 

 

 ☞  일본 일정 안내

일시

도보 구간

경유지

도보거리

숙박장소

4월 22일(월)
4월 23일(화)
4월 24일(수)
4월 25일(목)
4월 26일(금)

4월 27일(토)
4월 28일(일)
4월 29일(월)

일본 대마도로 출국
이동하는 날
현지답사
현지답사



 

부산국제여객터미널 대마도항
대마도 탐방 (歷史民俗資料館.金石城 등)
대마도
→ 온도 (배편 이용)
온도 → 토모누우라 (버스 이용)
토모노우라 → 우시마토 (버스이용)
오시마토 → 오사카 (버스이용)

오사카
→ 히라카타
히라카타 → 교토

선편이용
차량이동차량이동

차량이동
차량이동
차량이동28 Km
31 Km

 

4월 30일(화)

 

교토 (문화유적 탐방 - 고려미술관 등)

 

 

5월  1일(수)
5월  2일(목)
5월  3일(금)
5월  4일(토)
5월  5일(일)
5월  6일(월)
5월  7일(화)

 

교토 → 구사쓰
구사쓰 → 오미
오미 → 하코네
하코네 → 타루이
타루이 → 이치노미야
이치노미야 → 나루미(나고야)
나루미 → 오카자키

27 Km
22 Km
27 Km
30 Km
37 Km
32 Km
26 Km

 

5월  8일(수)

 

오카자키 (문화유적 탐방)

 

 

5월  9일(목)
5월 10일(금)
5월 11일(토)
5월 12일(일)
5월 13일(월)

 

오카자키 → 토요바시
토요바시 → 하마마츠
하마마츠 →
가케가와
가케가와
후지에다
후지에다
→ 시미즈

33 Km
39 Km
32 Km
31 Km
36 Km

 

5월 14일(화)

 

시미즈 (문화유적 탐방)

 

 

5월 15일(수)
5월 16일(목)
5월 17일(금)
5월 18일(토)
5월 19일(일)
5월 20일(월)

 

시미즈 → 요시하라
요시하라 → 미시마
미시마 → 오다와라
오다와라 → 후지사와
후지사와 → 가와사키
가와사키 → 동경 황궁

32 Km
33 Km
30 Km
38 Km
33 Km
20 Km

 

 

 

일본 구간 거리 합계

633 Km

 

 

 

한국 - 일본 전구간 도보거리 합계

1,157 km

 

 ☞  조선통신사 이야기 !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信義)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 분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 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京都]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의 사절단으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파견목적은 임진왜란 전에는 주로 왜구 금지요청이 주가 되었으나, 그 후에는 강화와 포로들의 쇄환(刷還), 일본국정의 탐색이었고, 1636년(인조 14) 이후는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가 주 임무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는 조 일 양국간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존을 위한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파견절차는 일본에서 새로운 막부장군의 승습이 결정되면, 대마도주는 막부의 명령을 받아 통신사청래차왜(通信使請來差倭)를 조선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 조정에서는 중앙관리 3인 이하로 정사 부사 서장관을 임명하고 300~500명으로 구성되는 사절단을 편성하였다.  여정은 한양을 출발하여 부산까지는 육로로 간 뒤, 부산에서부터는 대마도주의 안내를 받아 해로를 이용하여 대마도를 거쳐 시모노세키[下關]를 통과하여 일본 각 번의 향응을 받으며 오사카[大阪]의 요도우라[淀浦]에 상륙하였다.  그 뒤 육로로 교토로 갔다.  조선 전기에는 이곳에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교토가 종점이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장군이 도쿄[東京]에 있었기 때문에 목적지가 도쿄가 되었다.  일행이 통과하는 객사에서는 한시문과 학술의 필담창화라고 하는 문화상의 교류가 성대하였다.  특히 통신사에 대한 화려한 접대는 일본의 재정을 압박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으며, 그 때문에 1711년 아라리 하구세키는 통신사 접대에 관한 규정을 바꾸기도 하였으나 1719년에는 다시 환원되었다.  막부장군에게 조선국왕의 국서를 전달한 통신사는 대개 6개월~1년이 소요되었다.  그들은 방문하는 곳마다 서화 시문 등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것이 화려한 행렬도를 그린 병풍 회권 판화 등의 형태로 전해진다.  또 그들은 귀국 후 일본에서 겪은 일들을 여러 형태로 남겼는데, 이것이 《해행총재(海行總載)》라는 견문록으로 엮어져서 당시 두 나라 간의 외교적인 역할 및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

- 조선시대에도 한류(韓流)는 있었다 -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위는 통신사가 타고 간 선박
(게이오 대학 도서관 소장).
         아래는 에도시대 일본화가가 그린 조선통신사 인물도.

☞  誠信의 교환

조선통신사는 조선과 일본의 7년간 즉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의 전후 처리를 위해서 시작되었다. 1592년 4월, 일본군 20만이 부산에 상륙함으로써 시작된 임진왜란은 일본천하를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야심에서 출발하였다. 임진년과 정유년의 재침 도합 7년의 전쟁으로 조선은 그야말로 쑥밭이 되고 만다. 明軍의 지원으로 조선군과 明軍의 합동작전과 전쟁에 지친 일본군 그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 죽음으로 전쟁은 종결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전쟁이 끝났지만 일본이 다시 재침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그 동안 일본군이 데려간 포로의 송환문제도 있어 조선정부는 사명당 송운대사를 대마도에 파견한다. 당시 일본 국내사정은 급변하고 있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內戰을 통하여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을 제압하고 실권을 잡고 있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국내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조선과 더 이상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 자신은 본래 조선 전쟁에 반대하였고, 그 후 직접 참가하지 않았던 것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조선과 우호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오사카 전투에 참가했던 이 때 그는 73세였다.

또 하나는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였다. 중국대륙에는 조선을 도와 일본을
물리친 明이 망하자, 만주의 소속민족이 淸을 건국 明의 혼란을 틈타 북경으로 진격하였다. 그 후 중국대륙의 중원을 차지한 淸의 독자적 외교질서에 일본과 조선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적대국이었던 조선과 일본이 대청 견제의 연대의식이 움트기 시작하였는지 모른다. 서로 독립국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교린관계가 필요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안팎의 분위기로 대마도에 사명당 일행은 대마도 영주 宗氏의 안내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을 만나기 위해 京都까지 오게 되었다. 당시 京都의 후시미 城에 체재하고 있던 토쿠가와 이에야스는 사명당 일행을 만나 포로 송환에 성의를 보이고 조선과의 성의와 신뢰 誠信의 교환을 통한 通交를 환영하였다. 그리고 조선에서 사절단을 보내주기를 요청하였다.

                           
일본에 가서 포로를 송환시켰던 유정 사명대사
. 옆의 깃발은 임진왜란이 끝난후 1604년 사명대사가 일본과의 평화를 논의하기 위하여, 일본에 갈 때 선조가 하사한 길이 210cm의 깃발이다. ‘사대선교행 이조판서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 양국대장 사명당현제군 사령(賜大禪敎行 吏曺判書大匡輔國崇錄大夫 領議政 兩國大將 四溟當鉉諸軍 司令)’이라고 깃발에 적혀 있다.  

조선정부는 포로 송환의 목적을 띄고
“회답겸 쇄환사”라는 이름으로 여우길을 正使로 하는 사절단을 보내게 된다. 그 때가 1607년이었다. 이 “쇄환사”는 그 후 1617년, 1624년 2회 더 계속 되다가 1636년 제4회 째부터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파견된다.

☞  문화의 “로드 쇼"

포로 쇄환사로 시작한 조선통신사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파견되었다. 조선에서 온 관리가 500여명, 조선통신사를 경호하는 대마도의 무사들 200명, 현지안내원 등 모두 1,000명 규모의 사절단이 구성되었다. 머무는 곳도 간단치 않아 체재지의 대부분은 절을 이용 분산숙박 하였다고 한다.


                                        
 조선통신사 행렬도.

당시 기록을 보면 대개 조선통신사가 한 번 왕복에 6개월에서 1년이 걸렸다고 하며, 여기에 소요되는 예산이 당시 일본 정부로서는 지금의 화폐로 환산하면 1,000억 엔의 재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외 사절단 영접 준비 등에 3,000명 정도가 차출되고 머무는 곳의 大名(領主)들이 지불한 돈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특히 나고야 지역에는 기소, 나가라, 이비 등 큰 강이 세 개나 흘러 1,000명이 강을 건너는데 각각 배다리(舟橋)를 가설하여 이용케하였다.

통신사가 오기 2년 전부터 시작되는 배다리 가설공사에는 수많은 인력과 재정이 소요되었다. 배다리는 배를 잇대어 판자를 깐 다음 양쪽에 새끼와 철사를 또는 등나무 등굴 등으로 메고 큰 기둥을 강 양편에 세워 두 줄로 배다리를 묶는다. 배다리에 사용되는 배는 강 3개에 모두 500척이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저 멀리 흩어져 있는 배들 뒤로 배다리
(舟橋)가 보인다. (에도 시대)

이러한 거대한 배다리 가설공사로 보아 당시 일본정부가 조선통신사를 얼마나 특별 예우하여 영접하였는지 알 수 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은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숙소 등에서 조선통신사를 통해 漢字를 이용한 필담을 하였다. 그리고 서로 글을 주고받았다.

통신사 일행이 지나가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데는 5-6시간이 소요되었다고 하는데, 일본사람들은 도시락을 준비하여 아침부터 연도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통신사 행렬이 지나간 지방으로서는 대단한 행사였기에 곳곳에 그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글로서, 그림으로서 남겨놓았다.

각각의 소임을 상세하게 표기하여 남긴 두루마리 그림.


에도시대의 최고 화가들이 동원되어 그린 조선 통신사의 인물도
그들 눈에 위풍당당하고 자긍심이 넘치는 모습으로 비추었음을 알 수 있다
.


조선통신사 행렬도 중
‘전통무’를 보여주는 장면의 일부이다.
이 그림 그대로의 전통무가 현재 일본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통신사가 재정문제로 반대에 부딪쳐 1811년 마지막에는 대마도까지만 갔다가 되 돌아 갔다. 그 이후에는 조선통신사 행렬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다.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온 것이 그로부터 50년 후다. 조선통신사 교류가 유일한 대외 접촉이었던 쇄국일본은 조선을 통한 대륙문화 흡수에서 영?미 등 해양문화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문화선진국 조선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  조선통신사 부활

1868년 일본은 德川막부를 쓰러뜨리고 明治유신을 거치면서 德川막부가 한 일은 모두 무시된다. 德川家가 좋아하여 200년 이상 해오던 조선통신사 외교도 역사 속에 파묻히고 많은 자료가 소멸되고 만다. 당시는 征韓論 대두될 때라 조선(韓)의 선진문화의 도입을 이야기하는 조선통신사는 明治의 대외정책과 맞지 않게 되었는지 모른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明治 이후의 일본은 세계 2차대전의 패전으로 망할 때까지 근린국의 침략과 확대 정책이 지속된다. 이는 마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 등 확대 정책과도 유사하다.
그로부터 1945.8.15 패전으로 근 80년간 계속된 일본의 침략정책이 종지부를 찍게 된다. 일본은 다시 德川 시대의 정신으로 되돌아간 듯 하다. 선린우호의 정신, 外征보다 內政에 힘쓰던 德川의 시대를 찾게 된다. 이로 인해 조선통신사에 대한 역사 자료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조선통신사 행렬 두루마리의 일부분.
(나가사끼현 지정 문화재)
대마도 역사민속자료관에 전시되어 있다
.

지금부터 30년 전에 일본의 여러 절에 奉獻되어 보관되어온 조선통신사의 두루마리 그림이며, 병풍 등이 발견되었다. 조선의 관리와 그들을 호위하는 일본의 무사, 가마를 메고 짐을 나르는 일본의 서민들 그리고, 연도에 수많은 일본인들이 그려진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곳곳에서 발견돼 당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그려 보관해온 조선통신사 기록그림
.


 
  ‘조선국신사회권(朝鮮國信使繪卷)’ (대마역사민속자료관장)
    “ 길을 비켜라. 조선에서 오신 통신사 지나신다! “

제일 먼저 나서는 것은 기수단이다. 길을 비켜라는 의미의 淸道旗. 그리고 조선국왕의상징인 龍旗가 나간다. 그리고 악대다. 일반적으로 취타대라고 불리는 각종 악기를 연주하면서 당당히 지나간다. 나발, 태평소, 대금, 해금, 징, 바라, 북 등 입으로 불고 손으로 치면서 연주하는 악대가 지나가면 국서(금서)함 행렬이 뒤따른다.

                      
 
                   일본 호위무사의 경호를 받으며 가마에 앉아  늠름하게 입성하는 조선 관리의 모습
.

국서함은 조선국왕이 德川家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이다
. 국서함을 둘러싸고 군관, 사령이 지나간다. 그 후 正使행렬이 지나간다. 차양이 되어 있는 가마에 朝服을 단정히 입은 정사가 앉아 있다. 일본인 가마꾼 8명 외 기수, 역관, 사령 등이 따른다. 그 뒤로 副使 및 從事官 행렬이 지나간다. 사이사이에 일본의 경호무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  조선시대의 “한류" 

조선통신사는 조선의 선진문화를 일본이 받아들인 것으로 당시 조선으로서는 자신들에게 침략을 자행한 일본민족에게 성의를 다한 것으로 보여진다. 학자들은 조선정부가 조선통신사를 파견하여 그 후 200여년간 한?일간의 평화가 유지된 것은 일본의 침략 즉 武에 대해 조선이 선진적인 文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고 조선민족의 아량과 우수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통신사 행렬은 문화교류의 의미있는 역사적 이벤트였다.

특히 대마도에 근무하면서 대조선 외교를 담당했던 당시 일본제일의 朝鮮通 이었던 아메노 모리호우슈(雨森芳洲)는 그 자신이 2번씩이나 조선통신사의 안내역을 맡아 에도까지 수행하는 등 당시 조선과 일본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우호증진을 꾀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도 조선통신사를 통해 일본의 사정을 알게 된다
.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소개한 조엄도 1764년 조선통신사의 정사 자격으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고구마를 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통신사는 초기 정치적 목적에서 차츰 문화사절의 내용을 띈다. 일본의 유교문화며 에도시대의 높은 문화가 조선통신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조선통신사를
보려고 거리로 몰려나온 환영인파.)
통신사의 행렬에는 반드시 음악이 연주되었고 또한 무용도 행해졌다
. 음악관계 수행원은 평균 약 50여명에 이르렀다. 음악인들은 각지에서 의식으로써의 음악을 연주하였고, 따라서 궁중음악의 악장에 해당하는 전악(典樂)외에 취고수와 세악수의 악대가 수행했다.

당시 일본사람들의 조선통신사에 대한 열열한 환영은 지금의 한류 즉 “겨울 소나타(겨울연가)”의 배용준, “욘사마”의 붐에 못지 않았다고 보인다. 당시 일본 사람들이 기록용으로 그려놓은 두루마리 그림을 보면 조선통신사를 보기위해 연변에 들어선 일본 사람들이 빽빽하다. 특히 지금의 토오쿄, 당시 에도의 중심거리는 조선통신사가 지나가기 하루 전부터 자리를 잡으려고 아우성이었다 하고, 조선통신사가 지나갈 때 구경나온 일본인들의 진지한 모습이 남아있는 그림은 인상적이다. 

 

 ☞  제3차 [2011년] 조선통신사 옛길 한일우정걷기 사진모음


경북 영천에서 사물놀이 공연으로 환영을 해주고..


문경경새재에서 기념사진


 충북 충주시장님이 직접 격려를 해주고, 식사도 후원..


경북 문경시에서 대대적인 환영를 해주시고..


경북 군위군에서 지역의 학생들이 따듯한 환영을 해주고..


부산시 동래구로 입성하며.


경북 안동시장님이 열렬한 환영을 해주시고...


경찰종학학교 악대가 일행들을 특별환영...


카나이미키오님이 그동안의 과정을 책으로 출판


걷기구간에 지역의 학생들이 환영을 해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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