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화랑단 예절서당]은 우리스러움의 뿌리에 둔 자아성찰의 도덕적 예절수련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청소년  예절서당]은 한문의 [사자소학]을 교재로 하여 우리스러움의 뿌리에 둔 자아성찰의 도덕적 예절수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몸을 바르게 한다"  "생각을 바르게 한다"  "행동을 바르게 한다"  "말을 바르게 한다"  "인사를 바르게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건전하고 건강한 청소년을 육성하는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지식위주의 입시교육과 무차별적으로 보급되고 있는 전파매체 및 PC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두뇌발달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청소년의 감성과 정서와 도덕적 인성을 반비례적으로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동적생활을 안정시켜 동과 정을 구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청소년으로 성장케 하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한문교육이 갖고 있는 전통성과 사고력 개발을 실생활에 접목시키는 수련이므로 장기간의 수련기간 동안 성숙된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으며, 우리 전통 예절을 훈장과 지도자를 통해서 힘든 과정을 통해서 재미있고 알차게 배울 수 있는 수련활동입니다.



교육의 목적

예의바른 청소년을 육성한다.
감사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실천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반성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봉사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행동을 바르게 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생각을 바르게 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몸을 바르게 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부지런한 청소년을 육성한다.
민주적인 청소년을 육성한다.
생각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책임지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희생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말을 바르게 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인사를 바르게 하는 청소년을 육성한다.



교육의 내용 (사자소학, 명심보감)

1. 한자를 바르게 쓰고 활용하게 한다.
2. 한자의 음과 뜻을 알게 한다.
3. 좋은 글귀를 암송하여 평소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4. 한자의 짜임을 통하여 한자를 이해한다.
5. 선인들의 사상과 감정을 이해한다.
6. 대자연과 함께 호연지기를 기르게 한다.
7. 한자어를 알게 문장과 언어생활에 활용하게 한다.



교육의 목표

예부터 사람의 올바른 성품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탐욕이니 이는 곧 물욕(物慾)의 폐해를 경계하라 함입니다.

그래서 고인(古人)은 금설(金屑)이 수귀(雖貴)하나 착안즉병(着眼卽病)이라 하였습니다.  금가루가 비록 귀중한 물건이지만 눈에 들어가면 병이 된다고 함이지요.  그러하니 예(禮)를 알지 못함이요, 예(禮)를 행할 수 없음이요, 인내(忍耐)할 수 없음이요, 정진(精進)함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묵비사염(默悲絲染)이란 말씀이 있습니다.  옛날 묵적(默翟)이란 사람이 흰 실에 물을 들이는 것을 보고 슬퍼했다 하였고 양곡기로(楊哭岐路)라는 말씀을 살펴보면 양주(楊朱)라는 사람은 두 갈림길에서 앉아 울었다고 하였는바 이는 모두 선(善)한 성품에 악(惡)한 성품(性品)을 물들이지 말라는 경구(警句)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본시 선(善)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욕(物慾)에 눈이 가리어진 금생(今生) 현대인들은 자기본성을 못 찾고 따라서 예(禮)를 잃고 인(忍)이 실종되니 비도(非道)가 땅을 휩쓸고 마음을 닦아서 실천하는 정진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 있어서 인간의 재교육은 당연히 필요한 것입니다.

인이무교(人而無敎)면 즉근어금수(卽近於衾獸)요 옥불탁(玉不琢)이면 불성기(不成器)요 인불학(人不學)이면 부지도(不知道)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으로서 배움이 없으면 금수(禽獸)와 같고 옥(玉)도 다듬지 않으면 훌륭함이 없음이니 배우지 않으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는 말씀처럼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똑같은 물이라도 소가 마시면 젖이 되나, 뱀이 마시면 독이 되듯이, 배움도 근본 된 마음으로 닦여진 사람이 공부해야 도를 성취할 수 있듯이 지자학즉성도(知者學卽成道) 어리석은 자가 글을 배우면 세상을 속이고 남을 헤치게 됩니다.  그래서 공자님께서는 행유여력(行裕餘力) 이어든 즉이학문(卽以學問)이니라 하였습니다.

곧 마음의 때를 벗기는 행동을 실천하고 난 후(後) 그래도 남은 힘이 있거든 학문을 행(行)하라고 하였습니다.  
성현들은 이토록 인성을 중요시하였고 곧 그것이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이 곳 화랑단 예절서당은 『난 사람』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된 사람』을 깨닫게 하고 교육(敎育)시키는 곳입니다.



교육의 의의

1. 우리들의 본성은 어떻게 파괴되는가?

맹자
는 말했다. 우산(牛山)의 숲은 옛날엔 아름다웠다. 그러나 큰 도시가 가까이 있어 나무꾼들이 나무를 베어 넘어뜨린 이상 이산이 과연 아름답게 보여 질 수 있을까?  낮과 밤이 산 휴식을 갖게 하고 비와 이슬이 山을 적셔 새로운 생명이 잇달아 땅에서 싹을 내밀고 있었는데 소와 양을 치게 된 이후, 풀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우산(牛山)이 황폐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산을 보면 이 산에는 古來로 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으리라고 상상한다.  과연 이것이 이 산의 본시 모습인가?  사람의 경우도 사랑과 정의심이 없을 것인가?  나무꾼이 도끼로 나무를 베어 버리듯 날마다 잘려서 깎여 나가면 어떻게 그 본성이 훌륭하게 지탱돼 나아갈 수 있을까?  확실히 밤과 낮이 회복 작용을 하고 또한 이른 아침의 상쾌한 기운이 있어 사람을 건전하고 정상적이게 하려 한다.

그러나 이 이른 아침의 기운은 희박하여 사람이 낮에 행하는 일에 의하여 곧 소멸되고 만다.  인간 정신의 이 끊일 새 없는 벌채 작업이 있으므로, 밤에 얻는 휴식과 회복은 그 균형을 유지하는데 충분치 않다.  
밤의 회복 작용이 그 균형을 유지하는데 충분치 않다면 인간은 짐승에게도 별로 멀지 않는 상태로 퇴화한다.
是故로 養育과 配廬를 얻으면 만물은 성장하고 양육과 배려를 얻지 못하면 만물은 타락하거나 퇴보하는 것이다.

2. 大我란 무엇인가?

사람이 아끼지 않는 신체의 부분은 없다.
사람이 아끼지 않는 신체의 부분은 없으므로 사람이 돌보지 않는 신체의 부분은 없다.  어떤 일이 착하고 악한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사람의 생각 또는 판단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大我를 희생하고 小我를 발달시키면 안 된다.  
소아에 마음을 두는 사람은 小人이고 大我에 뜻을 두는 사람은 大人이 된다.

손가락을 소중히 하다가 어깨를 다치는 사람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음식을 賤히 여기는데 그것은 음식이 우리의 소아를 기르고 大我에 유익하게 함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사람이 음식에 마음을 쓰고 大我에 관한 일을 잊지 않는다면 섭취하는 음식은 신체의 특수한 조그만 부분에도 미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곧 사색(思索)에 참여함이 없이 우리들의 시각과 청각이 외계의 것에 의하여 일어날 때는 물질적인 것이(物慾) 물적감관(物的感官)에 작용하여 그것을 사도(邪道)로 이끈다.

정신의 기능은 사색(思索)인 것이다.
사색하면 마음을 보존하고 사색하지 않으면 마음을 상실한다.  이것은 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天賦인 것이다.
大我를 수양하는 자는 小我가 또한 그에 따르니 수양되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大人이 되는 길인 것이다.


3.교육에 대하여

도리에 맞게 행하기를 원하고 선량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다소의 명예를 주기는 하겠지만 그것으로 대중을 움직이게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군자로서 백성을 교화하여 선량한 사회적 습관을 수립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길은 교육에 의한 길이다.
보석도 갈고 닦지 않으면 공예품이 될 수 없다.  
고로 옛 성현은 나라에 질서를 수립하려고 노력함에 있어 교육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했음은 사람은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도덕을 각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서경>에 이르기를 한결같이 교육에 마음을 쓰도록 하여라.  아무리 좋은 음식도 먹지 않고서는 그 맛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식한 지식이 많아도 그것을 배우지 않고서는 터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배움에 의해 비로소 자기의 지식이 부족함을 깨닫고 또한 남에게 가르칠 적에 자기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 넉넉지 못한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자기가 지니고 있는 지식이 넉넉지 못한 것을 절실히 느끼면 거기에서 向上을 원하여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로 수와 학은 상호간에 북돋운다는 말은 곧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이 절반이다.>라는 것 이다 .
그러나 교육에는 보통
4가지 폐단이 있다.

첫째, 학생들 가운데는 지나치게 많이 배우는 자가 있고,
둘째, 지나치게 적게 배우는 자가 있고,
셋째, 너무 쉽게 뜻이 꺾이는 자가 있고,
넷째, 너무 안이하게 배우는 자가 있다.


이 4가지 폐단은 사람에 따라서 각각 그 정신적 소질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실인데 가르치는 자는 그 차이를 알 적에 비로소 그 폐단을 교정할 수 있다.  
교사란 결국 학생의 장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북돋아 주고 또한 그 약점을 발견하여 그것을 구제해 주는 사람인 것이다.
대체로 교육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일은 교사(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기르는 일이다.  
스승이 존경을 받으면 따라서 그가 가르치는 내용을 존중하면 그들은 학문을 존중할 것이요, 곧 배운 대로 실천할 것이다.


4. 우리가 추구(追救)하는 인간의 팔덕목(八德目)은?

우리들이 추구(追救)하는 인간의 팔덕목(八德目)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자.

▶ 첫째 孝(효)란.
雪裡求荀孟宗之孝(설리구순맹종지효), 叩 氷得鯉 王祥之孝(구빙득이왕상지효)라고 하여, 맹종 (오(吳)나 라 사람)이 한겨울에 노모(老母)를 위하여 죽순을 따낸 효행(孝行)과 왕상(진(晋)나라사람)이 한겨울에 모친(母親)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약을 바쳤다는 고사가 있다.

▶ 둘째 悌(제)란.
시경에 다음의 구절이 있으니

환하게 빛 넘치는 산 앵두꽃 피였네
세상사람 중에서 형제 같음 또 없네
들판의 할미새 형제 어려움
급히 구하네
아무리 좋은 벗 있어도 그럴 땐
탄식만 하니
집마다 화목하여서 처자들 즐거우려면
형제의 도리 생각해 보게나
그것이 앞선다는 것을 알게 되리니

형제(兄弟)의 우애(友愛)와 정(情)을 읊은 상체지화(常逮之華)를 표현한 것이다.
어찌 형제간의 정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 셋째 忠(충)이란.
漢의 영양왕이 초(楚)의 항우(項羽)에 포위되었을 때 충신(忠臣)인 기신(紀信)이 초군을 속여 물리친 기신광초(紀信狂楚)의 고사가 으뜸이니라.  또한 후한서의 이응전(李膺傳)에 출전(出典)으로 해마다.  봄철이 되면 황하상류인 용문협곡에서 뭇 잉어가 모여급류를 타고 튀어 오르는데. 이때 성공한 잉어가 용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갖은 어려움을 물리치고 살아온 신하만이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이니 과연 이 나라에 수많은 관리가 있음에 진정한 애국을 그들은 실천하고 있음 이던가.

▶ 넷째 信(신)이란.
漢나라때 상산(商山)에 은거하여 바둑을 두며 지냈다는 백발의 4老人 상산사호[商山四皓]와 서왕모의 왕림에 대한 고사를 들 수 있으리라. 한무 고사에 의(依)하면 7月 7日 홀연히 파랑새가 한 무제의 궁전에 날아들었는데 이때 동방삭이 말하기를 "이것은 요지의 서왕모가 이곳에 온다는 소식을 알리기 위함이요" 라고 하였다. 곧 파랑새가 물고 있는 편지는 서왕모가 온다는 언약이요 그것은 곧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 다섯째 禮(예)란.
글과 유리(類理), 예의의 근본으로 칭해지는 복희씨(伏羲氏)가 천하를 다스릴 때에 하도낙서(河圖洛書)의 고사와 孟子님의 고사를 들 수 있을 것이며 곧 예는 자신(自身)으로 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남에게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는 것이다.

▶ 여섯째 義(의)란.
수많은 고사가 많으나 세속인들 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삼국지연의(三國誌演義)의도원결의 (桃原結義)를 들 수 있으리라. 容遇操 義何釋, 何春日棲挑原, 君臣共誓 (용우조비의하석, 하춘일서도원, 군신공서)

▶ 일곱째 廉(염) 이란.
요(堯) 임금 때 속세를 떠나 산속에 은거(隱居)한 고사(高士) 소부(巢父)와 허유(許由)의 모습과 수 천리 를 날아가도 배고파 허기(虛飢)져도 닭 모이는 먹지 않는다는 鳳飛千刃 飢不啄栗(봉비천인 기불탁율) 고사가 으뜸이니라.
군자로서 염(廉)을 실천하는 것은 물러날 때 물러날 줄 아는 것이 현명하며 그래서 廉溪塞川 前進后退 (염계새천 전진후퇴)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 여덟째 恥(치)란.
桐江之釣 首陽之菜微 貴場深處. 梅月分明(동강지조 수양채미 귀장심처 매월분명) 백이 숙제의 고사를 든다.  
이에 따라 백이 숙제의 천추청절 수양매월 (千秋淸節首陽梅月)이라 하였으니, 주무왕(周武王)의 통치가 옳지 않다고 여기어 세상에 나오지 않는 그들의 치(恥)란 정녕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있으랴.


우리는 항상 수심(修心)함을 잃지 않고 삶의 근본으로 삼는 8덕목을 현대사회에서 결핍된 인격수양 (人格修養)과 잃어버린 정신의 세계 倫理道德 禮義凡節(윤리도덕 예의범절)의 중요성을 청소년들에게 지도함으로써 인간다운 참다운 교육의 마당을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